잡문/기타 잡문2018. 3. 5. 22:37


오랜만에 워킹데드라는 미드를 다시 봤다. 이전에 시즌 4까지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감각으론 그 때 이후로 적어도 6~7년 이상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2017년에 시즌 8을 하고 있다고 하니 불과 4년 전인 셈이다. 4년 전 좀비 매니아인 사촌동생이 추천하던 탓에 슬금슬금 보던 걸 며칠 만에 밤새워 시즌 4까지 정주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재밌는 드라마였으니 지금까지 시즌이 끝나지 않고 계속 방영하고 있는 거겠지. 

근데 사실 내가 정확히 시즌 몇까지 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걸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보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이건 좀 무식한 방법이다. 요즘엔 유튜브에 가면 '워킹데드 시즌1 요약' 같은 방송을 만들어서 대략 20분 만에 미드 시즌 하나를 통째로 복습할 수 있는 영상도 있긴 하다. 몇 달 전에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리즈가 개봉했을 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활용했다. 굳이 수십 시간을 투자해서 전체 스타워즈 세계관을 복습할 필요 없이, 유튜브 영상을 돌려보는 것만으로 대충 1~2시간만에 스타워즈에 대해 되짚어 보는 식이다. 물론 빨리 빨리 새로운 걸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방법이 최고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상이 꼭 재밌는 것이라는 법은 없다. 차라리 내가 몇 년 전에 재밌게 봤었지만 기억에서는 흐릿해진 영상을 다시 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 

4년 전에 좀비라는 장르가 '유행'했다. 지금은 그 유행 같은 것도 완전히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유행이 끝났다기보단, 마치 어떤 장르가 탄생하고, 특정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장르를 소비하고 있는 것처럼 좀비는 유행을 넘어서서 장르로 변했다. 단순히 좀비라는 것이 등장한다고 해서 유행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좀비가 등장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등장하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식이다. 

장르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워킹데드'는 좀비 장르물의 고전인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등장한 '와타나베'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마 픽 하고 비웃었을 것 같다. 고전이란 건 못해도 글을 쓴 저자가 죽은 뒤 50년이 지나야 한다고 했던가. 아니, 그냥 그건 와타나베의 독서법이었던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런 식으로 많은 시간의 소요가 고전의 전제 조건이라 할지라도, 워킹데드는 꽤 보는 재미가 있다. 

왜 하필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심각해지는 상황을 보면서 재밌다고 느끼는 걸까? 주인공들은 모두 고통에 젖은 상태에 있고, 나는 안전하게 모니터 밖에서 그 상황을 관찰하고 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내가 그런 끔찍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는 걸 되새기면서, 나의 고통을 잊고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게 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냥 단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상황들을 좀비물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걸까? 아니, 이것도 아니라면, 평소 칙칙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도시 라이프를 부숴버리고 망가트리고 싶은 나의 마음을 좀비물의 아포칼립스적인 환경이 대체 만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인걸까? 

어떤 심리이든, 별 상관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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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