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2. 5. 22:56
운을 인지하고 논의하면서 일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일의 퍼포먼스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운의 영향력을 인지하는 순간 의사결정, 집단 회의, 전략, 혁신 방법, 비즈니스 모델, 기획, 채용, 인사, 자기계발 등 일에 대한 모든 것이 제대로 정립되기 때문이다. 
1. 고영성, 신영준 <일취월장>, (주)로크미디어, 2017

회사에 들어와서 옆에 앉은 부장님이 말씀해주셨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힘내서 하려고 했던 일은 하나 같이 다 실패했는데,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다 되더라고. 가장 중요한 건 운이야." 

부장님이 평소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라거나 혹은 운만 바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그 말이 우습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부장님이 의미했던 건 조금은 다른 각도였다. 

회사에도 고과라는 것이 있고, 일을 성공해냈을 때에는 그에 따른 보상이 따른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에 수십 가지나 되는 프로젝트를 모두 떠맡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하루 동안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의 한계치가 있다. 그래서 열심히 예측을 시도한다. 성공할 것처럼 보이는 일, 실패할 것처럼 보이는 일. 사람들에게 일은 두 종류로 예측된다. 그리고 성공할 것처럼 보이는 일은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주식도 그렇듯 회사일도 언제나 예측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가장 성취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분야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큰 성취를 이룬 파트에서는 마이너스가 몰아치는 경우도 있었다. 

<일취월장>의 저자는 (아니 이게 일취월장에 처음 나왔던 말도 아니고, 네이트 실버라던가 홍춘욱 선생이 블로그에 여러 번 글에 남겼던 말이라 일취월장의 저자가 특별히 남긴 말은 아니긴 한데...) 더 나은 예측을 하기 위해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더 최신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라고 이야기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에 근거해서 보았을 때, 시장 조사라거나 혹은 회사의 장기 전략 같은 건 특별히 의미가 없긴 하다. 한 개인이 별 다른 데이터 없이 가볍게 예측하는 것은 틀릴 가능성이 너무나 많은 것이기도 하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근데 내가 '운'과 관련되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왜일까? 내가 과거에 실패했던 수많은 사례들, 나의 실수, 나의 잘못 같은 것들이 괜시리 운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미래를 향해서 운을 떠올리는 건 있을 법한 태도이긴 하지만, 과거를 향해서 운을 떠올리는 것은 꽤 한심한 태도인듯 싶다. 그런데도 내가 자꾸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이유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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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