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2. 4. 23:59
내 삶에서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다. 남자의 평균 나이가 80살, 혹은 장수한다고 하면 90살이나 100살도 꿈꿀 수 있는데 그렇게 치면 나의 삶이 여전히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어떤 특별한 것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다면 지금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격언이 사실 조금은 불편하다. YOLO하며 살아가라 라던가 혹은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문구이긴 한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난 조금도 내일을 위해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삶은 살지 못할 것 같다. 공부하는 것도 의미없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모두 부질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생산하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소비하는 삶이 더 매력적일 것같다. 만일 내게 주어진 것이 오늘 뿐이라고 한다면. 

내일이 그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어떤 계획을 세우는 즐거움이 있다. 내일이 있을 것 같아서 뭐 하나라도 더 공부해보고, 내일이 있을 것 같아서 지금은 조금 저축하는 재미를 느껴본다. 내일이란 말은 내게 걱정거리이기도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낭비하지 않고 있어볼 수 있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계속 걸어간다. 명확한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간다. 내게 있어 이런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잘 설명이 안된다. 소설 표지에서는 '아름다운 희망'이라고 묘사하고 있지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걷는 것 그 자체가 매력적이다. 

오늘이 저물고 나서도 내일 걸을 수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특별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더 즐거운 일이다. 남자의 평균 나이가 80살, 혹은 장수한다고 하면 90살이나 100살도 꿈꿀 수 있는데 그렇게 치면 나의 삶이 여전히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어떤 특별한 것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다면 지금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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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