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1. 29. 23:37
내일 중국으로 출장을 간다. 이전에도 몇 번 미국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불안감이 느껴진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미묘한 불안감. 꽤 그리운 감정이다. 앞으로 내게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예측하기 힘들고, 또 어딘지 굴욕을 당할 것 같은 예측이 될 때 이런 감각을 받곤 했다. 최근 몇 달 간 이런 감각에선 꽤 벗어나 있었는데, 오랜만에 이런 감각을 느낀다. 

고3시절 수능을 마치고 대학도 모두 골라놓은 시점에서 이런 기분을 느꼈다. 내가 특별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원한 대학에 가긴 갈 수 있는 건지, 혹여나 가게 된다면 그 대학에서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 건지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예측불가능성이 너무나 끔찍해서 심지어 난 수능을 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대학교 3학년 때 시험공부 하나도 안했던 영어강독 수업의 기말고사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시험 성적도 필요하고 재강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시험 공부는 애매하게 해둔 탓에 시험 직전까지도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시험 전날에 아예 밤을 새버리면서 공부를 했다가 시험장에 새벽같이 와서 2시간 정도 엎드려 잤다가 일어나 시험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를 지배했던 그 불안감은 무척 선명해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정말 끔찍했다. 

불안감만 따져보자면 가장 불안했던 건 취업 준비 시절이었지. 직장에 들어와서는 그 감각을 거의 상실해버렸지만, 그 때 날 지배했던 건 8할이 불안이고, 2할이 자괴감이었다. 불안감 같은 거 가져봤자 나한테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에도 난 어쩔 수 없이 그 감각에 굴복해 있었다. 불안감 같은 거 적당히만 느끼고 그 뒤엔 열심히 준비만 하면 되었을 것을 그 감각을 느끼기 싫어서 저녁만 되면 술을 마시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렇다고 오늘 저녁 술을 마시는 건 좀 아니다 싶다. 어차피 내일 중국에 가면 바이주 마시고 있을 성 싶은데 굳이 여기서 혼술 들이키고 갈 필요가 있을까. 불안해도 그냥 넘기자. 내일 죽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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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