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역사2017. 7. 14. 23:54


저자 : 주경철
출판사 : (주)현대문학
초판 1쇄 발행 : 2016년 11월 21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6월 30일 

1. 책 제목에 관하여  
누군가 '인문학' 서적을 읽고 싶다고 말한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1순위로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사실 서점에 가면 널린 게 인문학 책이다. 책 제목으로 인문학이라는 명칭을 넣기를 주저하지 않는 작가들이 많다.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 난 그런 책을 잘 고르지 못하겠다. 인문학이라는 게 저렇게 책 한 권에 끝낼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탓에 저런 제목의 책이 나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실은 우리가 인문학에 기대하는 매혹적인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이름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책 제목은 그것만으로 매력적이다. 평소 논문이나 딱딱한 전공을 공부하던 역사가가 일요일에는 폭을 넓혀 문학이나 예술, 철학에도 관심의 폭을 넓혀 역사를 버무린다는 의미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저자가 흥미롭다.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짤방이 생각난다.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아들이 자기 방에서 무언가 몰래 하고 있다더라. 그걸 궁금해 한 아버지가 '뭐하니?'라고 조심스레 들어가서 보니, 아들이 몰래 공업수학을 공부하고 있더란다. '일요일의 역사가'란 책 제목은 왠지 이런 느낌을 자아낸다. 묘하게 엄마 미소를 짓게 한다. 

2. 인상깊은 문구 
인상깊은 문구를 하나하나 소개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그 문구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다시 책을 한 권 써야 할 것 같다. 이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딱 2가지 정도만 빼서 소개하고자 한다. 

책 가장 초반은 신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간에게 술을 가져다 준 것으로 이미 유명한 디오니소스(로마에선 '바쿠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디오니소스의 탄생 신화를 시작으로, 디오니소스가 포함된 다른 신화 이야기로 서술을 이어나간다. 

디오니소스는 여자처럼 예쁜 얼굴과 탐스러운 몸매를 가진 미소년인 반면, 젊은 '마초'인 펜테우스는 자신의 육체적 힘을 과시하며 디오니소스의 여성스러움을 조롱한다. 국왕 펜테우스는 현실 세계의 지배자이지만 디오니소스는 영적인 영역에 있다. 현세의 권력을 가진 펜테우스가 디오니소스에게 "나는 너보다 더 강하다"고 단언하나 디오니소스는 "너는 네 힘의 한계를 모른다. 너는 네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네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내가 이전까지 디오니소스를 떠올리며 갖고 있던 이미지는 '향락'과 '떠돌이'에 가까웠다. 술의 신이니만큼 술과 향락을 좋아하며, 어딘지 모르게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책에선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근원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실제로 로마 시대에 묘사된 바쿠스 신은 이런 이미지가 더 강조되어 있다.  

하지만 위에 인용한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는 내가 그 전까지 갖고 있던 이미지와 다르다. 무지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이성과 합리로 지혜를 길러나가는 서양철학의 시작이다. 

이 책에선 펜테우스가 디오니소스를 상대하며 겪게 되는 끔찍한 비극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그리스 문명의 특질을 발견한다. 그리스가 왜 그토록 빛나는 철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일까. 왜 그들이 국가와 사회, 우주에 대해서 질문하고 사유하기 시작하였는가. 그것이 시작한 근본이 무엇는가. 저자가 신화의 한 장면에서 역사를 엮어나가는 방식이 놀랍고, 매혹적이다. 

16세기 말, 이탈리아 시골에 살았던 방앗간지기인 메노키오가 종교 재판소에 받았던 재판을 다룬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책에선 메노키오의 이야기가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불, 이 옴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입니다. 한 지고지순한 존재는 이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수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후략) 

당대의 명사도 아니었고, 철학자도 아니었으며, 지식과 철학에 노출된 귀족이 아니었던 그저 평범한 이탈리아 방앗간지기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이 당시 농민들 사이에 퍼져 있던 독서 습관을 소개하며, 그들이 갖게 되었던 머티리얼한 사고 방식을 소개한다. 그 사고방식의 기반이 된 구술문화를 소개하며 상류층이 갖고 있는 문자문화와 대립하여 이를 설명한다. 

보통의 경우 역사를 공부하며, 연도를 암기하고, 당시 사람들은 '반드시 이랬다'라는 어떤 관념을 갖게 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미시적인 부분을 파고들어 그 안에 숨겨진 균열을 발견한다. 균열 속에선 정상 세계를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균열은 나비효과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우리가 세상을 보며 '저건 정말 말도 듣도 보도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어.'라는 말을 할 수 있는데, 미시적인 역사를 파헤치면 이 어처구니 없음이 나의 무지였음이 밝혀진다. 이 부분에서 어떤 파격이 느껴진다. 

3. ‘일요일의 역사가' 3줄 평 
- 주변 친구 중에 누군가 '인문학' 서적을 읽고 싶다면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 
- 미시적 역사를 문학과 철학이라는 날실과 씨실로 묶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재밌기도 재밌지만, 읽다보면 똑똑해진다는 착각이 든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