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6. 16. 21:00
항상 최신 플랫폼을 써야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타자연습을 배웠다. 당시엔 운이 좋았다. 국가에서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정보화 시범학교로 선정했고, 상당한 양의 컴퓨터를 학교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우리 학교 전교생이 1,000명이 안되었는데 학교에 보급된 컴퓨터는 100대가 넘었으니 그 당시로서는 상당한 숫자였다. 방과후에 컴퓨터실에 가서 컴퓨터를 하며 천리안에 접속했다.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가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사람을 만나는 기술이 앞으로는 인터넷이 주가 될 거라는 것을 믿었고, 수십 년이 지나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아이폰3gs가 한국에 들어왔을 시절, 난 새로운 플랫폼이 갖고 있는 위력을 꽤 무시했던 것 같다. 내 주변 친구들이 모두 카톡으로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하고 무려 1년 반이 더 지나고 나서야 그 플랫폼의 가치를 인정했다. 내가 처음 쓴 스마트폰은 아이폰4s였다. 당시 난 핸드폰 자체를 거의 쓰지 않는 복고주의자에 가까웠는데, 아이폰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아이폰을 통해 난 MP3를 자유자재로 들으며 영어공부하는 새로운 방법을 익혔고, 다양한 팟캐스트(경제, 정치, 인문)를 들으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폰이 제공해준 여러 어플리케이션은 내가 시간관리를 하거나 메모를 하거나 물건을 구매하거나 은행업무를 하는 방식을 바꿨다. 사실 아이폰으로 내가 얻은 이점을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이런 점을 배워서, 아이패드를 접한 건 꽤 초반이었다. 사람들이 태블릿에 회의적이었던 아이패드2 시절, 난 알바비를 쏟아부어서 아이패드2를 구매했다. 아이폰과 별 다를 거 없어보이긴 하는데, 이걸 구매하면 내 삶이 어딘가 바뀔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패드2는 그 기대에 부합했다. 태블릿을 통해 난 신문 보는 방식을 바꿨고, 무료로 잡지를 읽었으며, 그림을 그리고 인터넷에 게재했고, 동영상을 더 자유롭게 시청했다. 스마트폰이란 플랫폼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애플워치는 더 일찍 구매했다. 애플워치가 한국에 출시된지 1달이 채 안될 무렵에 과감히 돈을 질러서 구매했다. 애플워치는 첫번째 모델을 산 탓인지 특별한 점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단지 애플워치를 끼고 있으면 매일 조금이라도 더 걷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 하나가 자극적이었다. 솔직히 돈이 아깝긴 했다.

2014년 쯤에 메모하는 방식을 에버노트로 바꾼 것도 상당한 혁신이었다. 이전엔 플래너를 쓰거나, 노트를 자주 사용했다. 에버노트를 쓰면서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뀌었다. 현재 에버노트엔 내가 평소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포함해서, 나의 일상 계획, 재정 계획, 각종 아이디어들이 가득 차 있다. 

요즘 가장 만족하는 건 독서하는 방식을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바꾼 것이다. 이건 약 2년 전부터 계속 시도하다가 6개월 전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방식이다. 처음엔 가격적으로 이점을 보고자 넘어갔다. 사람들은 전자책이 눈에도 안좋고, 집중력에도 좋지 않아서 별로라고 주장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써보니, 달랐다. 애초에 핸드폰으로 뉴스기사 읽기를 좋아했던 난 책보다 전자책이 편했다. 전자책은 글에 메모하기도 편하고, 밑줄 긋기도 편하며, 내가 읽었던 문장을 검색해보는 것도 매우 편리하다. 이런 점 덕분에 올해 6월까지 읽은 전체 책의 숫자는 작년에 읽은 책의 5배가 넘게 되었다.

위에 적은 것 말고도 많다. 만화 종이책에서 웹툰으로 넘어간 것. 종이신문에서 PDF파일, 궁극적으로는 인터넷 사이트나 Facebook으로 넘어간 것. 과거에 종이책과 노트만으로 공부하던 방식을 컴퓨터, 핸드폰만 켜놓고 공부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 이젠 종이돈을 99% 안쓰고 전자금융으로 대체한 것 등등.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나이가 드는 것이란 과거의 플랫폼에 사로잡혀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어차피 사람의 지식은 한정적이고, 우린 다른 사람 혹은 인공지능의 지식에 의존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식이나 정보, 사회 인프라에 접촉하는 속도와 너비의 차이일 것 같다. 과거의 플랫폼도 다 그것만의 매력이 있고, 이점이 있지만, 결국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은 새로운 플랫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리어답터의 삶을 선택하는 게 멋지게 늙어가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디지로그의 저자 '이어령'선생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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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