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6. 21. 23:42
작은 방
어릴 때 생각해보면 참 작은 방에 가족끼리 함께 모여서 살았다. 내 나이 5살 때였다. 

집주인이라는 게 있던 시절이었고, 우리 가족은 셋방 살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계급 관계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랑 집주인 아들은 친한 친구였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집주인네 집에서 보냈다. 부모님은 당시 내게 많은 장난감을 사주지 못했다. 지금의 내겐 5살이란 시간이 장난감을 갖기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막상 내가 부모가 된다면 과연 그 정도 나이되는 자식에게 장난감 하나 선물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법도 싶다. 

우리 셋은 정말 딱 누우면 그대로 방이 꽉 차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도 풍수지리는 생각한다고 머리는 남쪽으로 하고 잠을 잤었다. 발바닥 반대쪽에는 장롱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북쪽은 귀신이 사는 동네라 남쪽으로 머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여름만 되면 그 집엔 에어컨도 없었고 선풍기도 없었기 때문에 참 더웠지만, 귀신만 생각하면 항상 오들오들 피부가 떨리는 기분이 들어서, 귀신을 생각하며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이 그렇게나 작은 방에 살고 있었음에도 참 좋았던 건 텃밭이었다. 우리집 주인댁에서는 마당 앞에 텃밭을 기르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 일정 부분을 떼서 기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유치원에서 받았던 씨를 몇 개 심어서 풀을 길렀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주인댁 친구와 함께 한창 열심히 기르고 있던 풀을 무작위로 뽑으면서 미친짓을 했던 기억도 나지만 말이다. 

지금 내가 혼자서 쓰고 있는 방이 그 당시에 우리 가족 세 명이 살고 있던 방보다 큰 걸 생각하면 그 방이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대체 그 작은 방에서 우리 가족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던 것일까. 그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던 것일까. 이 글을 쓰면서 조심스레 생각해보니, 그 집엔 특별히 샤워실이나 화장실이 딸려 있던 기억이 없다. 대체 난 어디서 씻었던 것이고, 특히나 우리 어머니는 자신의 젊은 시절에 어디서 씻고 화장하며 생활했던 것일까. 놀랍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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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