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6. 3. 22:52

저자 : 황현산
출판사 : 다산북스 
전자책 발행 : 2017년 4월 24일 

1. 무게감 있는 수필
올해 2월부터 현재까지 매일 저녁엔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무작정 글을 쓰기로 하긴 했지만 아무 근거 없이 이야기하긴 어려워서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블로그 글을 하루에 한 개씩 쓰기로 했으니 책도 매일 한 권을 읽어야 할 것이다. 사람도 만나야 하고, 회사도 다녀야 하므로 책을 매일 읽고 쓰는 건 한계가 있다. 어쩌다 번개로 술자리가 만들어지면 당장 블로그 글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조급해진다. 혹은 아침부터 읽으려던 책을 저녁에 될 때까지 다 읽지 못할 땐 어떡하지, 마음을 졸인다.

처음 한 달간은 일부러 소설을 많이 읽었다. 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재미를 붙이면 탄력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한 권 읽는 게 가벼워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도 흐지부지되었다. 소설을 너무 급하게 읽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 소설을 만나면 책 읽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기도 하니까. 혹은 단박에 읽기 어려운 책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던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같은 책을 별 생각없이 시작했다가 하루 만에 읽지 못하고 넘겼던 경험도 내가 소설만 읽게 하는 걸 방해했다. (애초에 이런 책은 하루 만에 읽는 게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다고 해도 하루 만에 읽어도 되는 책이긴 할까.)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잡문이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잡문'이란 명칭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서 따온 것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멋진 글과 비교하면 정말 '잡스러운 글'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잡문이란 건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이나 정보를 인출하는 과정이 없어서 책 이외에 내 삶의 다른 어떤 부분에서 생각하고 보고 들은 것을 적어 내야 한다. 

이런 잡문을 적기 시작하면서 가능하면 여러 사람의 에세이를 읽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처음엔 가장 편하고 즐거운 무라카미 하루키였지만, 김연수, 임경선, 진중권, 김민섭, 알랭 드 브통 같은 다른 사람들의 글도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읽다보니 참 에세이란 장르가 매력적이란 느낌이 든다. 나 같이 '글'에 대해 뭣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쓸 수 있는 게 에세이이긴 하지만, 한 편으론 이런 에세이를 쓰는 게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유시민 같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깔끔한 문장구조와 함께 명확히 문단을 나누어 자기가 의도한 바를 전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론 그런 것을 모두 배제하고서라도 맛있는 글을 쓰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블로그를 하면서 여러 책을 읽고, 읽은 책은 빠짐없이 포스팅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읽고 나서도 포스팅하지 않는 책도 꽤 있다. 블로그에 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책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니까. 괜히 욕하는 글 써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황현산이 쓴 '밤이 선생이다'는 그 글 자체로 맛있게 읽기 참 좋다. 

나 같은 경우엔 사회 현상이라던가 이슈에 대해서 글쓰기를 참 못하는 편인데, 이 저자가 쓴 글은 사회현상에 대한 조망을 참 잘한다. 이 글이 쓰였던 시기가 2009~2012년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사건 사고가 잦았던 시기인데, 이 시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조용히 관찰하고, 생각을 다듬어서, 글로 써나갔다. 

그래서인지 보통 개인사를 주로 논하는 다른 수필과 달리 글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펴내려갈 때, '깊이 생각하고, 고민했구나.'라는 느낌을 준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도 있고,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문제들도 있는데,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구나, 생각하면 어딘지 마음에 위안이 된다.

아래에 그가 썼던 문장들을 조금 가져와 보았다.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맥락을 따진다는 것은 사람과 그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맥락 뒤에는 또다른 맥락이 있다. 이렇듯 삶의 깊이가 거기 있기에 맥락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일에 시간과 정성을 바치기보다는 행정 규정을 폭력적으로 들이미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한국을 이상 사회로 생각한다는 노르웨이의 한 청년이 이런 문제 저런 문제를 깊이 살피기보다 제가 생각한 세계와 맞지 않는 것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려 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2. '밤이 선생이다' 3줄 평 
- 개인적인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를 잘 끌어안아 조명하는 글. 
- 가볍게 통통 튀기보다는 무거우면서도 세련된 문체로 다듬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 나도 언젠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