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5. 7. 23:57
가끔은 말이란 것이 너무나 부차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모습으로 보이려고 좋은 말을 생각하거나, 유머스러운 말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내가 어떤 말을 할 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의 국적, 나의 나이, 나의 성별, 나의 직업, 나의 학벌, 나의 전공, 내가 사는 곳, 나의 부모님, 나의 옷이라던가 나의 외모 그런 많은 것들을 보고 이미 내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그냥 나에게서 기대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래서 내가 말을 참 잘한다거나, 유머스럽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사실 나의 말에 의존한다기보단 그 외의 것에 의해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할 때 거추장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 염려스럽고, 이미 말을 하기도 전에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까닭에 있다. 

어른들과 이야기 할 때는 더더욱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어른들일 수록 쌓아온 삶의 경험이 많고 이와 함께 쌓아온 삶의 편견이 많다. 이 때문에 내가 좋은 말을 해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이전에 나에 대해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이미 나에 대한 판단을 마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게 주어진 건 선택권이라기보단 정답권에서 답을 하냐 아니면 오답권에서 말을 하냐 정도의 차이다. 오답을 말할 때마다 그들에게 안좋은 인상을 남기기 쉽기 때문에 나는 정답을 말해서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배려해야 한다. 다만, 그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한다는 정도이지 나의 대화로 인해 그들이 나에 대한 인상이 좋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이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는 건 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제외한 다른 나의 삶이나 행동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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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