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3. 31. 23:45


저자 : 프레드 울만 / 옮긴이 : 황보석 
출판사 : (주)열린책들
한국 초판 발행 : 2017년 2월 10일 (영미권 출간 : 1971년) 
전자책 발행 : 2017년 2월 27일 

1. 섬세한 소년의 시선을 담은 책 
'이 책은 1930년대 초의 독일을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출신 소년 간의 우정을 그린 책입니다.' 라는 구성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만,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독일에 살던 유대인들이 어떤 상황을 겪게 되었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하고 있는 책입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유대인이란 키워드와 1930~1940년대라는 키워드가 엮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미 책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의 결말을 들춰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오랜 시간동안 유럽 전역에서 읽히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명저입니다. 오랜 시간 인기를 끈 책인만큼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이상으로 흥미로운 부분들이 넘쳐나니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책은 기본적으로 읽기가 쉽고, 그 묘사가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주인공 유대인 소년 한스와 새로 전학 온 독일 명문가 집안의 귀족 소년이 만나는 장면을 저자는 아래와 같이 묘사했습니다. 마치 우리는 소년의 눈으로 교실에 앉아서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서울 아이를 바라보는 시골 소년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또 한 편으로는 데미안에서 주인공이 데미안을 바라보며 느꼈던 미묘하면서도 두려웠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들의 옷처럼 빨래집게에서 떼어낸 게 아닌 것이 분명한, 멋지게 재단해서 주름을 잡은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의 양복은 비싸 보였다. 헤링본 무늬에 밝은 회색으로 거의 틀림없이 <보증된 영국제>였다. 또 연푸른색 셔츠에 작은 흰색 물방울무늬가 박힌 감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우리들 목에 둘린 것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더럽고 기름때가 낀 노끈 같은 것이었다. 비록 우리가 우아해지려는 그 어떤 시도든 모두 <계집애 같다>고 여겼음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여유로움과 차이를 부러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 귀족 소년이 전학 온 이후, 주인공은 이 소년을 면밀히 관찰합니다. 쉽사리 그에게 다가가서 그와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친구무리들이 그 소년에게 다가가서 친해지려다가 퇴짜를 맞는 장면들을 섬세하게 관찰합니다. 반 학급에서의 미묘한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능력, 그리고 독일 귀족 친구에게 다가가고자 주인공 한스가 취했던 전략들은 흥미롭고 공감이 갑니다. 

2. 개인적 우정과 시대적 갈등 사이 
책의 중반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나치즘이 퍼져가는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분위기들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개인의 삶을 영위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의 노력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그 무엇도 우리의 우정을 방해하지 못했다. 우리의 마법영영 바깥에서는 정치적으로 불안하다는 소문이 흘러들고 있었지만 태풍의 중심 - 나치스와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충돌이 보도되는 베를린 - 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유대인 집안이던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식으로 세상을 대처했는지에 대한 부분들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에 대한 부분들은 지나치다고 싶을 만큼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긴 합니다. 현실적인 인간이 취하게 되는 적당한 타협점들은 생략된 채로, 철저히 자신의 아버지가 완벽한 피해자였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 2~3군데가 있는데, 시온주의자(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다시 자신들의 국가를 지어야 한다고 보는 민족주의 운동가)와 아버지가 나눴던 대화는 이런 부분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을 위해 돈을 걷으러 왔던 시온주의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논쟁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시온주의를 혐오했다. (중략) "그렇소, 나는 동화된 자 맞소. 그게 뭐가 잘못이라는 거요? 나는 독일과 나를 동일시하고 싶소. 나는 유대인들이 독일에 완전히 흡수되는 걸 분명히 더 선호할 거요. 그러는 게 독일에 항구적인 이익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말이오. 

이런 부분들이 묘사된 후에 저자는 주인공 한스와 콘라드가 서로를 서로의 집에 초대시켜주는 방식을 통해서 시대적 비극을 더 강조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상황 속에서도 우정을 지키고자 저항하는 두 소년의 모습을 대조해서 보여주지요. 이런 부분들은 현실 속의 우정보다도 더 이상적인 형태의 우정으로 보입니다. 

책의 후반부로 움직일수록 현실은 더욱 극렬해지는데, 이 부분은 책의 주제의식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사실 몇몇 비판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소년과 소년의 우정이 너무 미화되서 그려진 부분들도 많고, 그런 부분들이 실제 우리 인간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부분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티없는 우정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길 바라는 마음인 것일까요. 

또 한 편으로는 이 책이 철저하게 유대인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홀로코스트의 기억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끔찍한 현실인 것임은 맞는 것이지만, 유대인이 아닌 순수 독일인의 입장에서 그 순간들을 다시 돌이켜 보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1930년대, 40년대를 살고 있는 독일인에게 있어서는 유대인들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에서 길게 서술하기는 어렵고, 관련하여 아래에서 다른 책들을 몇 권 추천합니다. 

3.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 
1) 책 초반에 독일 귀족 자재인 콘라드가 유대인 소년 한스와 마음을 터놓게 된 심리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책 후반부에 콘라드가 선택한 행동에는 어떤 배경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4.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책 : 볼프강 벤츠의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
- 책 : 리처드 H. 스미스의 '쌤통의 심리학' 

5. 3줄 요약
- 섬세한 소년들 간의 '이상적인 형태의 우정'을 그린 책 
- 유대인의 입장으로 그려진 유대인 학대의 기억
- 이 책은 초반 묘사도 훌륭하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재밌습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