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3. 24. 23:39


저자 : 다와다 요코 /옮긴이 : 최윤영
출판사 : (주)을유문화사
초판 1쇄 발행 : 2011년 3월 20일 

1. 책에 대한 인상
분명 "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구매한 책이었습니다. 읽다보니 이 책이 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에세이"라는 생각도 일견 들었습니다. 책의 전체에서 서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편입니다. 서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일부 존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징과 비유입니다. 그리고 그 상징과 비유는 '나'라고 하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소설 속 '나'라는 존재는 픽션이라는 형태를 빌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만 다와다 요코라고 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듭니다. 

이 때문에 이 책을 저자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우 짧은 책이지만, 책을 한 번 다 읽고 저자에 대해서 대략적인 설명을 읽은 뒤에 다시 읽고 나서야 이 책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다와다 요코는 일본인 저자라고 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독일어와 일본어, 두 나라 말로 글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으니 3가지 서로 다른 언어를 익힌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외국어를 생활하는 수준까지 익히다 보면 항상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모국어 단어와 내가 배우는 외국어 단어가 100%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어로 '입'이라고 부르는 부분과 영어로 'mouse'라고 부르는 부분이 서로 지칭하는 부분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을 알고 계신가요? 윗입술 바로 위에 있는 '인중'이라는 부분이 포함되냐 안되냐 여부가 다르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세세한 부분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한국인과 미국인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 다와다 요코가 대하는 태도는 이런 미묘함까지도 생각하고 넘어가겠다는 자세가 보이는 듯 합니다. 

다와다 요코(혹은 책의 주인공)는 마지막에 스스로를 이렇게 지칭합니다. 

'나는 투명한 관이다.' 

투명한 관이라고 하는 것은 자아 주체성이 없어 보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나를 나라고 부르지 않고, 남들에 의해서 나의 성격이 결정되어 버리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사실 책 전체적으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요. 한 가지 명확한 것은 1장부터 10장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계속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 '나'는 계속 직업도 변화합니다. 비늘이 있는 여자, 사진 모델, 통역가, 서커스 단원, 독일어 학생, 엄마의 딸, 타이피스트 등등. 이런 직업들을 묘사하는 과정에 보이는 공통점은 이런 직업들이 주체적인 지향과 목적에 의해서 자리잡은 것이라기보다는 타자에 의해서 규정되는 형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직업들이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을 때, 저자는 자신을 '투명한 관'이라고 묘사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소설 속 '비늘'의 의미 
소설에서 계속 비늘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욕조에서 나왔다. 비늘들이 아주 부드러워졌다. 나는 때밀이 돌로 비늘들을 밀어냈다. 비늘들은 놀랄 만큼 쉽게 밀려나왔다. 

비늘이라는 부분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그 뒤에 나오는 '머리카락'의 이미지와 매우 유사합니다. 

사람들은 머리카락이란 피부가 죽어 경화된 부분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내 몸 중 일부는 그러니까 이미 죽은 것이다. 

비늘, 머리카락. 두 부분 모두 어딘가 죽어 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딱딱히 경화되어 더이상 변화되지 않는 인간성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한 편으로는 한 가지 언어만 쓰는 사람들, 한 가지 직업만 가진 사람들, 한 가지 이미지만 가진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미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설의 맨 처음부분은 다음과 같은 문단으로 시작됩니다. 

인간의 몸은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다른 얼굴이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마와 뺨의 피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변하기 때문이다. 마치 밑에서 흐르는 물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고 위에서는 발 흔적을 남기는 인간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늪의 끈적끈적한 점액처럼 말이다. 

이 첫 문단을 기억하며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주인공이 지향하는 방향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녀는 매 챕터마다 새로운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그녀는 2개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녀는 일본인인듯 일본인이 아닌, 드라마 속 아시아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지칭할 때 나(와타시)라고 지칭하기 보다는 3인칭으로 지칭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은 비늘을 때밀이 돌로 밀어내고, 그 위에 모유를 발라 피부를 매끈하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매번 새롭고 변화하고, 살아있음을 직감하는 자유로운 인간을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3.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 
1) 앞서 말한 '비늘'에 대한 해석은 제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다른 식의 해석을 하신 분이 계신가요? 

2) 소설 4장에서 주인공은 호텔 종업원을 만나 '혀'를 빼앗깁니다. 이 부분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3) 사진사이자 독일어 선생인 Xander(크산더)의 이름은 알렉산더에서 따온 것이라고 소설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설명이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4.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책 :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 얼마 전 서평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있습니다. 같이 읽어도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5. 3줄 요약
- 에세이가 함께 얽힌 소설 
-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인간 실존에 대한 소설 
- 상징과 비유로 마구 뒤얽혀서 잘 읽히지 않는 글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