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1. 24. 23:56
아버지가 일하는 곳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아버지네 회사가 특별히 어떤 이벤트를 열었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떤 충동에 의해서 임의로 그런 이벤트를 하기로 결심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일요일이라 그 날은 특별히 어디 갈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아버지 회사에도 주말 근무로 당직을 서시는 아저씨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근무를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의 자가용을 타고 주차장에 내렸는데, 주차장엔 차가 몇 없었다. 회색 빛 주차장에는 차가 몇 대 있었고, 하늘은 유난히도 파랗고 흰 구름은 동동 떠 있던 기억이 난다. 

건물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공공기관 건물들이 유난히 그렇듯이, 멋대가리 없는 디자인에 공간 효율성도 떨어지는 형태가 유난히 많았다. 주말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바깥보다 그곳은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런 느낌을 다시 받은 건 십 몇 년이 지나 내가 군대에서 주말을 보낼 때였다.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서 동떨어진 무인도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지금이야 핸드폰도 있고 인터넷도 발달해서 어떤 장소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당시엔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분리된 공간은 실제로도 분리된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이 건물 저 건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시켰다. 나는 처음 보는 아저씨들인데, 혹은 스치듯이 사라졌던 아저씨들인데 그들은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와 잡담을 나누시면서 나에 대해서 많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평소 자신이 신중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생각보다 훨씬 떠벌떠벌하는 성격이다. 

인상 깊었던 건 내가 받았던 시험 성적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실제 내가 받았던 성적보다도 조금 높은 점수를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을 때였다. 아니,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기억하고 있다는 건 아마 그 점수의 격차가 꽤 커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동료는 나라는 사람을 실제 나보다 더 대단하게 전해들었다. 그 때 느꼈던 건 내가 실제 그런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하는 어떤 부끄러움보다는,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라는 감탄이었다. 

아버지 역시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인지라 그의 아들을 통해 끝없이 잣대에 부딪치고 평가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니 조금이라도 더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무던히 내게 신경 안 쓰는 것 같은 행동을 했었으면서 직장에 나와서는 꽤나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다녔던 것 같아 묘한 느낌을 받았더랬다.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선 그닥 인상이 없었다.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실 뭐 그런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건 아버지가 할 일이지 그의 아들이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아버지가 은퇴해버린 시점에서 그 때 아버지가 어떤 의미를 찾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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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