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4. 25. 21:11


저자 : 유즈키 아사코 / 옮긴이 : 윤재 
출판사 : (주)소미미디어 
초판 1쇄 발행 : 2017년 1월 20일 

1. 장난감 함께 갖고 놀던 친구를 추억하며. 
우리 집엔 전화기가 두 대 있었다. 한 대는 시외 전화를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 대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쓰는 전화기였다. 아파트 단지용 전화기는 3자리 번호만 누르면 걸렸다. 단지 내에서 서로 친구가 되면 서로 집 전화 외우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난 친구들 전화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같은 호수의 3층과 4층에 있는 놈들이었다. 당연히 번호는 외웠지만 전화는 안했다. 우리집이 5층이었으니까. 집 가는 길에 3층, 그리고 4층에서 벨만 울리면 됐다. 어림잡아 5번 찾아가면 3번은 거절당했다. 3층 아줌마는 날 친구 공부를 방해하는 눈엣가시로 여겼다. 뭐, 상관 없었따. 어차피 딴 녀석들에게 전화하면 됐으니까. 3층, 4층 친구보다 더 친한 놈은 따로 있었다. 난 그 친구에게 전화하곤 했다. 

난 12동 아파트에 살았고, 그 친구는 15동에 살았다. 고작 3동 차이인데, 그 사이에 아파트가 무려 6 채나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일단 받았다 싶으면 찾아간다고 했다. 녀석에게 특별히 거절은 없었다. 우린 친했다. 적어도 그 때의 난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가 날 찾아오지 않고, 내가 그 친구를 찾아간 건 녀석에게 장난감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3살 터울의 형이 있었다. 당시 3살이면 큰 차이였다. 친구의 형은 성숙한 어른이었다. 친구를 찾아가 형을 만나면 형은 날 웃으며 맞아주었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친구는 형에게 물려받은 장난감이 많았는데, 형은 의젓하게 장난감을 갖고 놀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나가서 놀았다. 그 당시 우리에겐 그게 정말 멋져 보였다.   

형이 나가면 난 친구와 몇 시간이고 놀았다. 

근데, 이젠 내가 그때 어떻게 놀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수십 개의 장난감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한 쪽에는 정의의 사도, 다른 한 쪽에는 악의 무리가 있었다. 숨겨진 비밀 장소도 있었고, 주인공을 위한 기지도 있었다. 어릴 때 일리아드를 읽어봤을리가 없는데, 사실 우린 일리아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서사 구조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린 이야기꾼이었다. 

친구와는 5학년 때 헤어졌다. 그 뒤로 연락을 못했다. 고등학교 때 잠깐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있긴 하다. 연락은 곧 끊겼지만. 친구의 얼굴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얼굴은 물론 함께한 기억도 뿌연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시간도 사라졌고, 우리가 만든 이야기도 끝끝내 책으로 출판도 못하고 없어졌다. (제길, 만일 그 이야기가 남아있었다면 난 호메로스보다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즈키 아사코가 쓴 '짝사랑은 시계태엽처럼'은 어린 시절을 먼지 속에서 들추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타카라코는 독특한 캐릭터다. 어른인 주제에 아이처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일본 나이로 29살인 그녀는 한국 나이로 치면 30살이 넘는다. 30살이 넘어도 그녀는 나이에 구속되지 않는다. 수상 버스를 타고 회사로 출근할 때마다 그녀는 장난감을 떠올린다. 물론 어른들이 흔히 생각하듯 '어떻게 장난감을 만들어야, 히트를 칠 수 있지?'라는 칙칙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캬, 순수하기 짝이 없다. 마치 10살 시절 내가 몸만 어른이 되어버리면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타카라코가 그녀의 짝사랑인 니시지마를 관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등장 인물들은 하나 같이 만화책 캐릭터마냥 순수하다. 어디 캐릭터 뿐인가? 이야기 전개 방식도 우리들이 어릴 때 많이 봤던 만화 극장의 전개 방식을 묘하게 훔쳐왔다. 이거 참 소설은 소설인데, 미묘하게 만화 같으면서도 일드 같다. 그렇다고 너무 유치하지도 않은 것이 꽤나 읽는 맛도 있다. 

타카라코는 장난감 기획자라는 직업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탐정역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액션가면 히어로역도 도맡고 있다. 그녀를 따라 어른을 위한 동화 속에 빠져들어가다 보면,  어른들이 펼치는 아이같은 순수함에 괜스레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실, 흔해 빠진 일본식 전개이긴 하다. 그래도 이 책은 괜찮다. 이미 결말은 다 보이는데, 그래도 읽는 책도 있지 않은가? 이게 그런 책이다.  

2. 3줄 요약 
- 장난감 갖고 놀던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책. 
- 어린이 같은 어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 
- 뻔한 결말, 착한 결말의 일본드라마랑 별반 다를 것 없지만, 그래도 좋은 그런 책.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