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8. 3. 3. 22:22

저자: 임선경
출판사: 도서출판 들녘
초판 1쇄 발행: 2016년 4월 22일 
전자책 발행: 2016년 4월 28일

1. 비범한 소재, 아쉬운 결말  
소재와 설정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소재.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앞으로 몇 일을 살 수 있을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제약이 있다. 오로지 그들의 등에 써있는 숫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이 주인공에겐 제약이 된다. 자신의 등은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거울을 비춰서도 쉽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 역시 알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죽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은 묘하게 꽤 익숙한 소재다. 아마 비슷한 종류의 능력을 일본 만화에서도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등 뒤에 숫자가 적혀있는 형태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다만 이런 능력이 어떤 소설이나 이야기에서 쓰였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도 비슷한 상상을 꽤 많이 해봤던 것 같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죽는 날이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 때 내가 취하게 되는 행동패턴은 어떤 것일까? 나의 정신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끔찍한 운명론에 의해서 미쳐버리고 마는 걸까? 

소설의 내용을 스포하자면, 

이 소설은 아래와 같은 바보같은 독백으로 끝이 난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좌절하고,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여기고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죽을 날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저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교훈을 얻었다. 삶에 유일한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무지다. 그날을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 그리하여 선택할 수도 없는 것. 나의 백넘버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또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을 알면서도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용기 따윈 없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몇 번이고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나는 무엇이 나를 그 길로 이끄는지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불안해하며 살 것이다. 

근데 난 사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가 마치는 게 적절한지 의문스럽다. 애초에 이 소설은 처음에 자신이 설정으로 잡아놨던 것이 어떤 배경에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대체 주인공은 백넘버를 왜 볼 수 있게 된걸까? 그리고 왜 사람들은 백넘버가 있는 걸까? 주인공의 바보같은 선택에 의해서 백넘버의 숫자가 바뀔 수 있는 거라면, 결국 주인공은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럼 대체 몇 명이나 바꿀 수 있는 건데? 대체 왜 주인공은 거기서 한 발 짝 더 나아가지 않는 거지? 왜 바보같이 운명에 순응하고, 슬퍼하면서 소설을 끝마치는 거란 말인가? 그게 대체 뭔 의미가 있단 말인가. 

또 하나 딴지를 걸자면, 굳이 거울 없이도 자신의 등을 볼 수 있지 않나? 나도 적당히 허리를 비틀면 나의 등을 볼 수 있긴 하다. 물론 등 전체는 볼 수 없어도 일부를 보더라도 거기에 적힌 숫자가 뭔지는 유추할 수 있을텐데? 어차피 거울을 통해서는 숫자를 볼 수 없다는 설정이라면, 그냥 이마에 숫자가 적혀 있다는 설정이 더 그럴싸하지 않나? 아니면 뒷통수라거나. 

2. '빽넘버' 3줄 평 
- 이야기의 소재는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 구성도 나쁘지 않고, 전개도 나쁘지 않다. 
- 하지만 결말은 애매한 시점에서 끝났고,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쉽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