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8. 2. 12. 22:56

저자: 서유미
출판사: 민음사
초판 1쇄 발행: 2015년 1월 9일
전자책 발행: 2015년 7월 24일 

1. 정적인 색채감 
장면 하나하나가 필름영화처럼 영사되는 소설을 읽어본 건 꽤 오랜만이다. 솔직히 소설에서 어떤 묘사가 진행될 때, 그것이 묘사라고 느껴지는 순간 몰입감 같은 것이 완전히 깨지게 되는데, <끝의 시작>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근데 이 소설은 진짜 묘사가 많다. 묘사된 장소들의 모습이 꽤나 정적이기도 하고, 그 안에 있는 인간 군상들의 행태도 꽤나 정적이다. 예를 들어 소설 맨 초반엔 이런 묘사도 있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4월의 풍경은 찬란하다. 잘 정돈된 인공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몸집을 한껏 부풀린 채 생명력을 과시했다. 그 속에서 환자들은 보호자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거나 휠체어에 탄 채 천천히 산책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감정에 빠져 경이와 절망 사이를 오갔지만 대체로 무표정해 보였다. 그건 체념에 가까운 무표정이었고 병동의 특성과 관계가 깊었다. 흰색 환자복은 목련이나 벚꽃처럼 하나의 풍경을 이루었다. 

소설 초반부터 이 소설이 끝나가는 마지막까지 4월이라는 이미지가 무엇보다 강조된다. 보통, 4월이라는 건 '끝'이라는 이미지로는 잘 쓰이지 않으니까. 4월이 가져다주는 어떤 강렬한 색채감. 그 색채감이 끝, 혹은 죽음과 같은 이미지와 맞물려서 매혹적인 정취를 가져다 준다. 

아마, 영무의 엄마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음에도 붉은색 그것도 아주 강렬한 붉은색 립스틱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색채감의 일환일 것 같다. 혹은 국장이 포장해 온 호박죽의 주황빛 색깔이라거나. 혹은 소정이 마시고 있는 믹스커피의 색깔이라거나. 혹은 형광빛으로 묘사되는 영무의 아내 여진이라거나. 

내게 소설의 취향이라는 게 있나, 싶은 부분이 있긴 한데, 그런 걸 하나 꼽자면 색채감이다. 2005년에 한강이 쓴 <몽고반점>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미칠 듯한 색채감이 이 소설에서도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느껴졌다. 그게 참 좋았다. 

소설을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각자가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무, 소정, 여진, 석현. 색깔이라는 감각은 이 색이 튀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는 안정감에서 명확해지는데, 이 소설은 가장 마지막 끝 장면까지도 그런 안정감을 잃지 않고 한결 같이 흔들린다. 

2. '끝의 시작' 3줄 평 
- 책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펑펑 울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채로 남아있게 만들었다. 
-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내 이야기 같아 마음에 착 달라붙었다. - 서유미라는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