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9. 14. 21:34

저자 : 무라타 사야카 / 옮긴이 : 최고은
출판사 : (주)살림출판사
초판 1쇄 발행 : 2017년 7월 28일 

1. 무라타 사야카. 
한 작가의 작품을 적어도 2권 이상 읽게 되면, 그 작품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작가의 주제 의식 같은 것이 드러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읽었던 파트릭 모디아노도 '기억'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인 정유정 작가의 작품도 '사이코패스, 광기'라는 주제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무라타 사야카 작가 역시 '편의점 인간'이라는 책과 이번에 읽은 '소멸세계' 2가지를 함께 읽고 나니, 이 사람이 파고드는 주제가 '정상 혹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은 어딘지 현실감이 떨어진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작가가 그리는 세상의 형태가 비약이 심하다는 느낌도 들고, 혹은 너무 과장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 작가가 그리는 세상이 판타지 세계라던가, 혹은 SF 공상과학 속의 모습을 그리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핵심 소재, 예를 들어 성생활의 형태 혹은 가족의 형태 혹은 육아의 형태를 미리 짚어놓고, 이걸 완전히 뒤집어 엎으면 어떻게 세상이 돌아갈까. 라는 상상이 그려내는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은 다른 어떤 소설가의 책보다도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진하다. 소설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제의식을 향해 자신의 온 정신을 쏟아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 주인공 코브가 처음 애리어든을 꿈 속 세상에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코브는 애리어든에게 꿈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길 권유한다. 애리어든은 자신이 꿈 속의 생경한 세상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도시를 빠른 속도로 바꿔나간다. 갑자기 강 한가운데에 다리를 만들고, 도로 위에 육교를 만들고, 거울로 된 공간을 창조한다. 코브는 애리어든에게 경고한다. 지나치게 세상을 바꿔나가다 보면, 그 꿈 속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애리어든에게 집중할 것이라고.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이 그런 느낌이다. 작가 자신은 결코 그 소설 안에 등장하지 않지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무라타 사야카가 그려놓은 어떤 비틀림에 집중하고 있다. 대화의 내용도 모두 그와 같은 것이다. 

2. 정상 세계 혹은 소멸 세계에 관하여 
이 책에선 핵심적인 몇 가지 가정이 그려져 있다. 

1) 만일 연인들이 더 이상 성교하지 않게 된다면? 
2) 만일 연인들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다면? 
3) 만일 아이를 낳기 위해선 인공수정만 하는 것이 보편화된다면? 
4) 만일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과 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나 영화 캐릭터랑만 하는 것이 된다면? 

황당하기 그지 없는 가정이지만, 이런 가정이 현대사회와 완전히 벗어나 있는 건 아니다. 저자가 있는 일본도 그렇거니와 한국 역시도 사람들이 애를 낳지도 않거니와, 결혼조차 하지 않는 것이 점점 일반화 되고 있다. 급격한 출산 저하와 함께, 한 해 결혼하는 커플의 숫자도 무서울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한창 결혼해야하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 역대 최저치의 결혼 커플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 9시 뉴스에서 떠들만한 주제이다. 이런 심각한 사태를 일본은 한국보다 더 오래 전부터 경험했고, 이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종류의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도 상당수 등장했었다. 

더불어 연애하지 않고 만화나 애니, 혹은 드라마에만 빠져서 '역시 3d보단 2d가 최고지!'라고 외쳐대는 사람들도 극소수지만, 일본에선 일종의 현상처럼 확대되고 있다. 

하나의 세계는 어떤 보편화된 공통 가치를 갖고 보편감을 느낀다. 그런데 세상을 조직하고 있는 기본적인 법칙이나 공감하는 경험이 달라진다면, 이건 일종의 세계가 바뀌는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저자는 현재의 보편감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혹시 이런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건 아닐까'라는 주제로 가정에 가정을 꼬리 물어서 이어나가본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꽤 진지한 형태로 쓰여진 판타지 혹은 SF소설인데, 사실 그 어떤 내용도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흘러가는 건 아니다. 다만 주목해서 볼 수 있는 건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어떤 절대적인 시대정신이라던가 세계정신이 있다고 믿는 것에서 벗어나, 시대에 따라 느끼는 감각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이질감이 심하며, 그래서 또 매력적인 책이다. 

3. '소멸세계' 3줄 평 
- 정상적인 가족이란 무엇일까, 정상적인 성생활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비트는 소설. 
-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곤 있지만, 이 책은 일종의 과학 사고 실험 같다. 실험의 주제는 비범하다. 
-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미래 사회의 모습 중, 적어도 1가지 이상은 맞는 게 나오지 않을까.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