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책 이야기(9) - 요즘 나만의 책 고르는 방식
원래 전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안 읽을 것만 같은 서점 한구석에 처박힌 책만 골라 읽었죠. 그렇게 책을 고르면 어딘지 내 스스로가 남들보다 우월해 보였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막상 책을 사놓고 읽지 않은 경우가 상당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버렸습니다. 자존감이 떨어졌던 건 아닙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취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책이라면, 뭔가 장점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죠. 한 편으론 베스트셀러가 고르기 편해서 그런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대놓고 베스트셀러부터 살펴봅니다. 베스트셀러를 빼놓고 읽자는 마음보다는 아예 베스트셀러를 빠짐없이 읽자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렇게 읽다보면 대세가 뭔지 알 수 있을테니까요. 이렇게 책을 고르면 별로일 것 같은데도, 의외로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요즘엔 하루 한 권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있습니다. 두꺼운 책은 엄두도 내지 못하죠. 전자책 기준으로 5만~10만자 정도가 좋습니다. (종이책으로는 150~250페이지 정도 되는 길이입니다.) 일본소설처럼 쉽게 읽히는 책은 15만자 길이더라도 짬짬이 읽으면 하루 안에도 읽을 수 있습니다. 평일 오전과 오후엔 회사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출근시간과 퇴근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하루 독서시간이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되는데요. 쉽고 빨리 읽히는 책이 좋더라고요.  

두꺼운 책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두꺼울 수록 한 가지 주제를 깊게 파고든 경우가 많은 데요. 이런 책들은 길게 두고 읽는 맛이 있습니다. 장기 독서 프로젝트가 필요합니다. 아직 다 읽지 못해서 포스팅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에번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 러처드 H.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같은 책입니다. 이런 책들은 한 번 사면 몇 주 간 읽어야 하니, 신중히 골라야 합니다. 대충 골랐다가 몇 달 째 책장에 처박힐 위험이 있죠. 그래서 1달에 3권 이상 살 수 없습니다. 

짧은 책(5만 ~ 10만 자)들은 쉽게 지를 수 있습니다. 재미 있는지, 읽을 가치가 있긴 한건지는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블로그에서 최고의 책이라고 추천하는 책도 별로일 때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혹평의 리뷰가 달린 글이 보물인 경우도 있죠.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이 때문에 책이 짧기만 하면 고민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하루면 읽을 책인데 너무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방식으로 요즘 대박친 책이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둘 다 짧다는 이유로 무조건 샀었는데, 책 후반부에 제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맛을 주더군요. 

실패한 사례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고슴도치의 소원'같은 책입니다. 어떤 책인지 별 고민하지 않고 읽었는데 저 한테는 맞지 않았습니다. 섬세한 사람을 위한 힐링 동화 같아서 읽기 어려웠거든요. 

짧다고 다 사는 건 아닙니다. 매일 카테고리를 배분해서 읽으려고 합니다. 기본은 소설입니다. 소설은 재미, 감동, 지혜, 독서 레퍼런스를 목적으로 읽습니다. 소설을 많이 읽으면 공감능력이 는다고들 하는데 이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저도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공감력이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애초에 기본 능력치가 낮아서일까요? 물론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게 됩니다. 사이코패스를 다룬 책을 읽다보면 사이코패스는 우리와 다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할머니를 다룬 책을 읽으면 할머니들이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많이 읽으면 많이 읽을 수록 더 다른 주인공을 다룬 책을 읽고 싶은 건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설이 안 읽힌다 싶으면 에세이를 읽습니다. 에세이는 쉬운 책이니까요. 고민하거나 생각 정리할 필요 없이 작가가 떠먹여주는 이야기들을 받아먹으면 됩니다. 김연수 씨가 쓴 수필집이 그런 책입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 입을 벌려주고 음식을 떠서 '호~호~' 불어서 먹여주는 느낌입니다.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은 '여러분, 요것도 한 번 먹어볼래요?'라고 귀여운 크기의 간식을 쓱 내미는 느낌입니다. 에세이는 일종의 독서 간식입니다. 

소설이 잘 읽힌다 싶으면 비소설을 읽습니다. 비소설은 독서 의욕이 필요한 책이니까요. 초반엔 온 힘을 집중해서 읽어야 합니다. 중후반 쯤 되면 책이 나를 읽는 느낌이 들지만 말이죠. 굳이 비소설 중에 힘이 안드는 책을 고르자면 사회심리학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비교해보는 맛이 있어서 읽기가 쉽습니다. 비소설 중 어려운 책을 고르자면 과학도서입니다. 사회심리학과 달리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서 가장 어렵지요. 

비소설을 읽을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요. 우선, 외국인이 쓴 비소설은 어렵습니다. 외국인답게 외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생소한 외국의 지명, 외국의 연예인, 외국의 음식 명칭은 책 이해도를 현저히 떨어트립니다. 둘째, 대중서를 노린 책이 좋습니다. 비소설은 주로 대학원을 수료한 석사, 박사들이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때문에 논문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서 책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논문 형식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이런 책은 읽기가 어렵습니다. 해당 내용 전공자라면 몰라도, 문외한이라면 이해조차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소설은 전자책으로 사더라도 미리 서점에서 어떤 식으로 썼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죠. 신중히 잘 고른 비소설은 왠만한 소설보다 매력적이라 골라볼 가치가 있긴 합니다. 

정리하자면, 제가 책 고르는 방식은 길이, 카테고리 딱 2가지네요. 짧은 길이의 책은 아무거나 사서 읽어보고, 긴 길이의 책은 신중히 골라서 읽는다. 단 소설을 고를 때보다 비소설을 고를 때 더 신중하게 고른다. 이 정도네요.  

여튼, 
좋은 책 잘 골라 즐거운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