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에 한정한다면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렸을 땐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소설이 너무 싫었다. 중편이나, 단편 소설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분야였고, 고작 A4 1~2페이지에 그치는 에세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분야였다. 글이 재미없거나,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어렸을 땐 그냥 한 가지에 집중해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 떨어지면 철저하게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집중한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내게 고향같은 느낌을 줬는데, 장편 소설을 읽다가 현실에 돌아와서 생활하고 다시 저녁에 소설을 펴들 때 느끼는 기분좋은 회귀본능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래서 하나의 장편이 끝나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마치 어린 시절 설날이나 추석에 집에 돌아가자고 하면 느끼게 되는 끔찍한 기분과 비슷했다. 물론 엄마와 아빠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의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젠 묘하게도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집중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장편소설을 10일 넘게 같은 집중력으로 읽는 것이 무척 힘들다. 10권 짜리 책을 읽더라도 아예 10일 내로 책을 독파해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1년이 걸리도록 질질 끄는 것이 요즘 내 행태이다. 하나의 책을 1년 쯤 읽다보면, 한참 전에 읽었던 부분은 아예 생각도 안나게 된다. 애초에 그 정도로 기억이 안나고, 그 정도로 시간을 질질 끈다는 건 책을 읽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난 요즘 집중력이 너무 딸린다. 

어릴 땐 동영상이 싫었다. 화려한 영상 전체에서 내가 보는 부분은 그닥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음악도 열심히 듣고, 미장셴도 챙겨보는 것 같다. 근데 사실 내게 있어 영상이란 글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듯 싶다. 그런데도 요즘에 그리도 영상을 챙겨보는 이유는 집중력이 지나치리만치 많이 떨어진 것도 한 몫을 한다. 글을 읽는 행위로 나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힘들게 되어버렸다. 

같은 이유로 옴니버스라던가 단편이 참 좋아졌다. 애초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하나의 세상에 푹 빠져버리지도 못할 바엔 그냥 짧은 이야기라도 즐기는 편이 낫지 않나. 

같은 이유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졌다. 2시간. 어릴 땐 그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서, 영화가 싫었다. 영화가 갖고 있는 복합적인 매력을 차치하고, 그것이 내게 주어지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게 불만이었다. 

지금도 욕망은 있다. 어렸을 때처럼 내게 집중할 여력과, 그 정도로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집중해서 이야기에 빠져보고 싶다. 그게 꽤 즐거운 일이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