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책 읽기
올해 초 블로그를 시작했을 땐 거의 얇은 책만 읽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목표가 지금처럼 하루 1 포스팅이 아니라, 하루 1독서 1포스팅으로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 압박감이 상당했다. 멋모르고 재밌어 보이는 책을 골랐다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소진하고도 글 쓸 시간 자체가 부족해서 마감의 고통(?)을 느끼기까지 했다. 물론 그 덕분에 서점가에 나와 있는 유명한 책 중에 얇은 책이란 책은 죄다 읽어볼 수 있었으니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다독하는 습관이 나쁠 건 조금도 없다. 비록 그것이 내게 남겨주는 과실이 적을지언정 내 잠재의식 속에 계속 양분으로서 남아 있는 건 명확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나서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읽었던 과거의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독하기가 어렵다. 사실 오늘 블로그에 올리려 했던 건 이런 잡스러운 글이 아니라 네이트 실버가 쓴 <신호와 소음>이라는 두꺼운 책에 대한 포스팅이었다. 예전처럼 하루 1독서 해야한다는 압박도 없었던 터라 느긋하게 2주동안 읽었던 책이었다. 독서 기간이 2주 정도로 늘어지다보니 책 후반부에 접어들 때 쯤에는 책 전반부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 전반에 걸쳐 고슴도치와 여우를 비교했고... 베이즈 정리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서술했던 것 같긴 한데, 막상 이걸 정리해서 글로 쓰자니 내가 이걸 완전히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 이런 걸 다 읽고 독후감이랍시고 블로그에 쓰는 게 쪽팔리는 일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독서에 100% 이해라는 게 어딨겠는가. 허구헌날 하는 것이 오독인걸. 얇은 책 읽는다고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겠나. 내가 블로그에서 매일 읽고 쓰는 시라는 것도 항상 오독하는 거고, 쉬운 오락소설도 오독하고, 가벼운 만화마저도 오독하는걸.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100%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심지어 나 자신도 스스로를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이 써내려간 책 역시도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내가 잘못 읽은 부분에 대해서 열심히 헛소리를 포스팅 해두면, '아, 이건 정말 너무 심했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어떤 분이 "아, 그냥 지나가다 본 건데... XX는 잘못된 것 같네요 ^^"라고 코멘트를 달아주시겠지.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