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3. 6. 23:48

저자 : 최은영
출판사 : (주)문학동네
초판 발행일 : 2016년 7월 7일
전자책 발행일 : 2016년 9월 26일

1. 쇼코의 미소 

"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정말 끔찍한 경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제 행동과 생각의 모든 순간에 관여합니다. 저도 할머니와 함께 삽니다. 그리고 그것에 진심으로 혐오와 고통을 느낍니다. 주변 사람들은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 너무 쉽게 이야기 합니다. '참 좋겠다.' '집안일도 해주시는 거 아냐?' '그래도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좋지?' '잘해드려라.' 물어보고 싶어 집니다. "당신, 정말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아본 적 있어?" 조부모와 살아가면서 전 '나'라는 인간의 초라함과 야비함, 그리고 끔찍함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죄책감, 중간에는 분노, 마지막에는 후회를 느낍니다. 

최은영 작가는 이런 인간관계의 적나라함을 너무나도 손쉽게 파고듭니다. 작가의 생각의 깊이, 마음의 깊이가 너무나도 가슴 중앙을 도려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이런 생각은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 같이 들리는데,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 마냥 가슴에 와닿습니다. 너무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이런 문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소설보다 수필에 가까운 글처럼 느껴집니다. 바로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 그대로 소설에 옮겨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들은 정말 흔하게 느꼈던 것인데, 왜 이전까지 읽어보았던 수많은 좋은 소설들에는 이런 문장이 없었을까요? 

응웬 아줌마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봤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어땠는지,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는지, 바다를 가보았는지, 한국의 바다는 어떤 색인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음식은 무엇인지. 아줌마의 질문은 공부는 잘하냐, 왜 이렇게 키가 작냐, 커서 뭐할 거냐 물어대는 다른 어른들의 것과는 달랐다. 

친구가 물어보는 질문과 어른이 물어보는 질문이 다르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습니다. 왜 하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이 소설 문구를 읽어보면서 차이를 조금 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정답이 있는 질문과 정답이 없는 질문의 차이. 그런 거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꼭 다시 기억하고 싶은 문구이기도 합니다. 

사실 엄마는 행복한 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행복을 드러냈다간 이모가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태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인간 관계를 맺을 때 나는 상대보다 더 우월한 상황이 되거나, 열등한 상황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상황들이 참 뒤죽박죽 섞여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그 우열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가끔 친구와 술을 많이 마실 때면,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친구가 술 값을 계산할 때면 이런 생각들은 분명해집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순간도 지나가겠구나.' 
너무 완벽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순간도 지나가겠구나.'
방안에 앉아서 정말 외로워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생각이 듭니다. '이 순간도 지나가겠구나.'

2. 책과 관련된 토론 주제
1) 내 주변 사람 중에 나에게 끔찍한 기분과 아끼는 기분이 동시에 드는 사람이 있나요? 왜 그런 기분이 들게 되었습니까? 

2) 어떤 관계가 끝날 때 떠나는 쪽이었던 경우와 남겨지는 쪽이었던 경우, 혹은 양쪽 모두 였던 경우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눠봅시다. 

3)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어떻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나요? 

4)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기라'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가끔 과거나 미래를 즐기는 경우는 없나요?

3.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책 : 우파니샤드 (어딘지 모르게 이 책에서는 인도 경전에 나오는 글귀들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기회가 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책 :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쇼코의 미소 소설집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과 사람 속에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우리네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이 떠올랐습니다.) 

4. 3줄 요약
- 내게는 정말 보물 같은 소설. 
- 사람을 위한 사람의 소설. 
- 3번 보면 3번 울고, 3번 웃고, 3번 기억하게 하는 맑고 담백한 서사.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