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4. 24. 22:16
나이가 한계가 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다. 성공에는 어떤 정해진 루트와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았다. 

중고등학교 때 나를 사로잡았던 가장 큰 공포는 재수였다. 재수를 하고, 삼수를 하는 것을 통해 인생 경로에서 1~2년 정도 뒤쳐지는 것이 이후엔 눈덩이처럼 큰 차이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공포였다. 솔직히 말하면, 재수라는 것이 얼마든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괴롭혔던 진짜 공포는 대학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회적 표징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만일 서울대를 가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못박히게 될 것에 관한 걱정이 강하게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엔 이런 사실을 조금 잊고 지냈다. 공포심 따위는 불확실한 시간 뒤로 숨겨둔 채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놀면서 허비했다. 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명확한 목표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애매한 상태로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차라리 고시를 준비하거나 일찍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하거나, 사업을 준비하거나, 혹은 뭔가 색다른 걸 목표로 시간을 쏟았으면 좋았을 텐데 특별히 그런 것 없이 놀았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이 흘러서 공포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취업 준비를 했고, 회사에 입사했다. 

첫 직장이 언제나 중요하다고 하는데, 입사할 때는 그런 걸 별로 체감하지 못했다. 외부의 시선으론 직장 따위 나중에 때려치고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얘기했는데, 생각보다 그게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나보다 먼저 은행에 들어갔던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무시했던 이야기였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가면 갈 수록 그게 심해진다. 

객관적 지표를 보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먼저 나의 한계를 결정해놓고 그에 따라서 움직인다. 이것 저것 시도해보고 그 뒤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눈치를 본 다음에 '역시 난 글렀어'라는 식으로 생각한 후 일단 뒤로 미루는 전략을 취한다. 그렇게 미루고 또 미루다보니 생각보다 타이밍이 나빠진다는 걸 깨닫는다. 비슷한 경험을 군대갈 때도 했었던 것 같다. 

근데 사실 어떤 한계를 정하고, 글렀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항상 나였다. 각 시기엔 그 시기에 어울리는 변명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변명을 핑계 삼아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자꾸 미뤄두다간 내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옳지 않다. 그런 건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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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