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4. 22. 23:53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의견을 교환할 일이 많다는 걸 느낀다. 어떤 경우엔 내가 내 의견을 죽여삼키면서 다른 이들의 의견을 포용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경우엔 고집스럽게 나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밀어 붙이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함께 그 일을 해나가고 있다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고, 결과가 동반된다. 

우리가 보통 평등한 사회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인 것처럼 우리를 포장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실은 싸움이 일어나는 걸 더 싫어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든 지혜로운 사람이든 누군가 우리보다 위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 5명의 사람이 있다면 5단계의 조직구조가 잡혀 있다면, 그 과정에서 싸움이라는 것이 있을 필요가 없다. 5명은 함께 모여서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맨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에 시키는 형태로 일이 진행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들고 반항한다면, 그건 꽤 무례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이런 구조에선 감정노동이 거의 없다. 어떻게 토론할지,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 윗사람이 내린 판단이 뛰어나면 그냥 윗사람을 칭찬하면 되고, 어리석은 것이었다면 그가 못듣는 위치에서 그를 비난하면 그만이다. 마음 편하다. 

조직구조가 평평한데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곳에선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애매모호한 관계라 먼저 나서는 사람이 나쁜 놈이 되기 쉽다. 한국 사회는 나이와 연차를 따지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든다. 어린 사람은 윗 사람의 눈치가 보이고, 윗 사람은 괜한 자존심을 걸기 쉽다. 잡담하며 이야기할 땐 너그럽고 괜찮은 사람인 척 하기 쉬운데, 막상 업무와 관련된 토론을 할 땐 이런 점이 매우 애매하다. 그래서 야심찬 사람이더라도 쉽게 포기한다. 사석에선 한국 사회의 나이나 연차 문화를 비판하면서, 막상 본인이 그런 사태와 맞서야 하는 경우엔 나이나 연차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행동하곤 한다. 그게 가장 편하면서도 충돌없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반대로 이런 나이나 연차, 조직의 상하구조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일 그 자체만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말했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런 행동은 나의 평소 생활 패턴이 올바른 방향에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함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도 함께 열정을 가졌을 때 좋은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엄하게 움직였다간 나만 정신나간 사람이 되기 쉽다. 

갈 수록 이런 고민이 심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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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