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4. 6. 23:57
노동이 신성하다는 주장을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자본주의의 개념도 몰랐던 시기이고, 사람들이 보통 어떤 식으로 돈을 벌고, 자산을 쌓는지에 대해서도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돈을 모으는 방법은 저축을 해야하는 것이고, 돈을 버는 방법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 기초적인 경제학을 공부했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교양 경제학 강좌를 들으면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 공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벌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직장에 들어오고 나서부터였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시기였다. 내가 너무 무지했던 것이다. 

내가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는 어렸을 때부터 경제학에 관련된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자본주의를 대처하는 사람들의 여러 대응 자세라던가, 국가 정책에 따라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돈은 어떻게 모이는 건지에 대해서 뒤늦게 생각을 갖추게 되었다. 피케티의 책을 읽고, 유시민이나 장하준이 저술한 책도 읽어보고, 마르크스가 쓴 책을 읽어보면서, 일을 한다는 개념이 생각보다 단순한 게 아니란 걸 느꼈다. 

내가 읽었던 책 몇 권을 토대로 일이라는 게 뭔지 하나로 요약한다는 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는 알고 있다. 글을 썼었던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내가 온전히 이해했을리도 없고, 또한 그렇게 정리한 내용이 올바른 말일 수도 없다. 다만 그걸 유치한 내 언어로 말한다면, 일을 한다는 건 나의 지식(이 지식이라는 건 감가상각이 있다), 시간, 체력, 정신력 그리고 기존의 인간관계라는 기회비용을 들여서 재화, 커리어, 경험치, 새로운 인간관계를 획득하는 작업인 것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Input과 Output은 앞서 말한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일의 종류에 따라 각각의 요소 별 중요도 역시 다르다. 다만 나의 짧은 경험을 토대로 보았을 때 이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은 아무래도 Input의 경우 시간, Output의 경우 재화가 아닌가 싶다. 시간 대비 벌어들이는 돈. 다른 많은 요소들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돈이라고 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돈은 단지 Output이 될 뿐 아니라 Input이 되어 새로운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의 목적 자체를 흐트러버릴 가능성이 높다. 노동이 신성하다, 신성하다 말하고 이를 들으며 자라났지만, 막상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노동의 신성성보다는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문제는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에 있어 노동의 힘보다도 오히려 축적된 자본 그 자체가 벌어들이는 돈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차별과 함께 노동의 가치가 무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의 가치를 위해 돈이 벌어들이는 자본소득의 기회를 차단하게 될 경우엔, 그것이 갖고 오는 다양한 기회와 효율성, 그리고 투자의 가치를 망가트리게 때문에 이를 국가가 무차별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것인가? 노동의 가치를 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자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 소득을 위해 최선의 경주를 다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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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