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국내소설2017. 3. 19. 21:00

 

저자 : 한강
출판사 : (주)문학동네
초판 발행 : 2011년 11월 10일
전자책 발행 : 2013년 12월 10일 

1. 책에 대한 느낌 
설국이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이 책을 좋아 하게 된 건 어떤 한국 소설가가 이 소설의 첫 문구를 좋아해서, 자신이 소설을 쓸 때 첫 문장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입니다. 설국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가끔 느끼는 것인데, 어떤 소설가들은 첫 문장에 꽤나 무게를 넣습니다. 어떤 소설가들은 완전히 힘을 빼서 썼다고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느 한 쪽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그렇게 느끼는 것 뿐입니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이 책은 이 문구로 시작합니다. '이게 대체 뭔소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반절 정도 읽었을 때도 이 문구가 납득되지 않아 몇 차례고 맨 앞으로 돌아 왔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첫문장에 꽤 무게를 넣었던 건 아니었을까? 혹시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써둔 뒤에 1장을 쓰기로 마음 먹은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장이 이야기의 끝인 것 같긴 한데, 이걸로 이야기가 끝나면 참 촌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소설의 구성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세계와 나 사이에 칼이 없었으니, 그것으로 그때엔 충분했다. 

2. 인상 깊은 문장과 감상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는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이 문구가 너무 인상 깊어서 친구들에게 이 문구를 설명하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었습니다. 책의 정확한 문장을 외운 것이 아니니,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더군요. 대체 한강이라는 작가는 이 문장을 무슨 마음을 갖고 썼을까요? 마지막 숲. 숲.을 연달아 이야기 할 때 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심어져 있는 어떤 나무와 그 나무들로 이뤄진 숲을 떠올렸습니다. 숲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고요. 바람이 꽤나 거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팔 년 전에 그녀가 낳은, 이제 더이상 키울 수 없게 된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무렵, 그녀는 인간의 모든 언어가 압축된 하나의 단어를 꿈꾼 적이 있었다. 등이 흠뻑 젖을 만큼 생생한 악몽이었다. 어마어마한 밀도와 중력으로 단단히 뭉쳐진 단 한 단어. 누군가 입을 열어 그것을 발음하는 순간, 태초의 물질처럼 폭발하며 팽창할 언어. 

소설 속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 주인공은 어딘지 모르게 강렬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 이미지를 그려준 문장이었습니다. 마치 '태초에 신이 있었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다가오는 느낌, 혹은 묵시록적인 어둠이 느껴졌습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후회, 집착과 슲픔과 나약함 들을 참과 거짓의 성근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게 한 뒤 사금 한줌 같은 명제를 건져올리는 논증의 과정에는 늘 위태하고 석연찮은 데가 있기 마련입니다. 대담하게 오류들을 내던지며 한 발 한 발 좁다란 평균대 위를 나아가는 동안, 스스로 묻고 답한 명철한 문장들의 그물 사이로 시퍼런 물 같은 침묵이 일렁이는 것을 봅니다. 

하나의 시처럼 소설 전체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문장들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추며 구성되어 있다는 감상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말이야.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그건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 아닐까? 그러니까,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 

주인공과 함께 한 축을 이루는 것은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의 이야기입니다. 서술의 방식이 1인칭으로 이뤄지는 것인지, 아니면 양 측으로 오고 가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전지적인 것인지 혼란스러운 형태가 이뤄지는데요. 희랍어 수업 시간도 언어를 배우는 것인지, 철학을 배우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게 이뤄집니다. 책은 어떠한 중심축을 잡아주지 않고, 그 혼란스러움 자체를 축으로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 
1) 가끔 자신이 쓰고 있는 말, 언어가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무섭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2)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있나요? 

3) 소설 속, 주인공과 희랍어 강사는 서로 어떠한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4. 함께 읽거나 보면 좋을 콘텐츠
- 영화 : 컨택트 (최근에 나온 영화입니다. 언어, 라고 하니 떠오르는 영화가 이 정도 수준입니다. 제 수준이 겨우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겠죠.) 
- 책 : 플라톤의 '국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책입니다. 워낙 두꺼운 책이라 저도 사놓고 찔끔찔끔 읽어보기만 하고, 완독을 하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라 제대로 읽히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희랍어 강사 같은 분에게 배워야만 하는 책일까요.) 

5. 3줄 요약
- 섬세한 시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읽은 것 같은 느낌 
- 문득 내가 말하고, 쓰고, 읽는 언어들 단어들이 장난처럼 느껴지는 순간
-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