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2. 11. 23:41
'남들에게서 내가 쓸모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을 하면서 동료와 있을 때도 그렇고, 사적인 모임에 나가 사람들과 있을 때도 그렇고, 술자리에서 왠지 모르게 농담이라도 꺼내야 할 것 같을 때도 그렇고, 연인과 있으면서 그 사람에게 내가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면 할 때도 그렇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 그런 모든 순간에 난 쓸모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그런 걸까? 

쉽게 초조해진다. 업무 중에 사소한 실수 하나가 동료나 상사에 의해서 드러날 때 엄청나게 짜증이 난다. 일자리에서 핸드폰 게임이나 하고 있는 사람보다도 내가 더 능력없는 한량처럼 느껴질 때 우울함을 느낀다. 쓸모 있다는 것이 내가 저녁 늦게까지 야근하고 있는 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의 같잖은 학력과 나의 지식, 혹은 어학 실력으로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해야할 지 감조차 오지 않을 때 화가 난다. 내 유머 감각이 미칠 듯이 짜증이 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효과적인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때 답답함을 느낀다. 

스스로 모자람에 대해서 인식하고 이것으로 인해 우울함을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을 개선시키는 행위라기보다는 타고난 성격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금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을의 입장이라면,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내게 쓸모있는 존재이길 원하는 갑의 입장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갑과 을을 오고 가지만, 선천적으로 갑에 있길 선호하는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느낀다. 가끔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이런 위치에 서라고 주장하는 종류의 책도 꽤 있던 것 같다. 사람도 사실 진화한 동물에 불과하고, 다들 잡아먹히거나 잡아먹는 두 종류의 부류로 나눠지기 때문에, 사람은 결국 갑의 위치에서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는 식의 논조였다. 재수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설득력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앞에 있으면, 그 사람들이 건방지다거나 뻔뻔하다고 느끼기 보단, 어떻게하면 그 사람들에게 내가 매력적인 존재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누가 지시 요청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을의 위치에 선다. 이런 걸 인식하고 나면, 그 사람을 마주 할 때마다 짜증이 난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 있다, 없다가 사실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우스운 일이다. 그걸 굳이 판단해서 어디 써먹을까? 내가 충분히 쓸모 있어지면 그걸로 난 만족스러워질까? 그 뒤엔 나도 다른 사람들의 쓸모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꼭 그런 사람만이 그런 판단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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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