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외국소설2017. 9. 2. 21:00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 / 옮긴이 : 권영주 
출판사 : (주)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 2013년 11월 15일 (일본 원작 발행 : 2001년 10월)
전자책 발행 : 2017년 8월 28일 

1. 생각하는 인간 
요즘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생각하는 화두는 '행동하는 인간'과 '생각하는 인간'이다. 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많다. 3~5명 정도의 작은 벤처회사도 있지만, 대기업의 경우엔 천 명 혹은 만 명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한다. 디자인팀에서는 디자인을 하고, 재무팀에서는 재무를 관리하고, 개발팀에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영업팀에서는 영업을 맡는다. 그런데 최근에 이 많은 사람들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가 행동하는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행동과 생각이 서로 MECE하게 분리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가지는 서로 미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디자인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라,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행동과 생각이 분리되는 이유는, 회사라는 환경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자인을 하고 있더라도, 해당 디자인이 제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지, 그리고 이 디자인이 고객에게 전달될 때 어떤 식으로 소비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고민은 실제로 내재화 하여 진행하기 어렵다. 내 생각을 반영하기는 커녕,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시키는대로 처리하는 데에도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서 의미있는 결과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행동이고, 이 행동을 온전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비록 나의 행동의 발원점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 할지라도, 이 생각을 구현하는 행동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밤샘근무라던가 주말근무 같은 일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생각'이라는 행위는 일종의 사치가 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선 행동으로 인해 소모되는 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 데이터를 만들기보다는 데이터를 전달받아 그 안에서 의미있는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이 생각이다. 완성된 가설은 '기획서'라는 이름으로 회사 안에서 검증 받게 되고, 상위 직급자의 결제를 받아낸 이후 회사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는 '행동'으로 연결된다. 

사실, 기획은 소수가 할 수밖에 없고, 회사 안의 대다수는 행동하는 것에 최적화된다. 

2. '빙과'에서 읽은 '생각하는 인간' 
이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빙과를 읽어서인지 이 소설이 단순히 학원추리물로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전형적인 생각하는 인간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본인 스스로를 생각하기에 공부도, 스포츠도, 연애 등도 적극적이지 않은 '에너지 절약주의자'이다. 즉, 무리한 에너지를 써서 '행동'하지 않는 자이다. 

주인공의 친구인 사토시는 반대에 위치한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학교 안에서 많은 활동을 한다. 본인 스스로 말하기를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며, 생각하기보다는 행동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점을 표방한다. 

그런데 사실 주인공은 엄밀히 말해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부족한 점이 있다. 본인 스스로는 생각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호기심' 혹은 '동기'다. 모든 생각엔 그 생각을 하기 위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주인공은 본인 스스로를 철저히 '회색'인간이라 부를 정도로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 

이 점을 채워주는 인물이 지탄다라는 여주인공이다. 그의 전형적인 대사 '저, 신경 쓰여요"라는 말 한마디는 오레키를 움직이는 방아쇠이다. 

이 때문인지 주인공과 지탄다는 이상적인 사회 조합을 의미하듯 함께 움직이며, '생각'을 한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던 이 소설의 구조가 다른 어떤 것보다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 자신이 현실에서 쉽게 취하기 어려운 '생각'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3. '빙과' 3줄 평 
- 재밌다. 
- 정보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설을 쌓고 수정하며 정답을 찾는 논증 방식이 매혹적이다. 
-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희생'된 누군가를 찾아서 밝혀낸다는 주제의식이 마음에 든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