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8. 1. 14. 23:56
국경으로 가주세요. 

비가 담벼락을 적신다 불 꺼진 상점들이
환해졌다가 더 어두워진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마네킹들
부러진 담배와 물에 젖은 라이터 
아무 말도 없는 택시 기사의 뒤통수, 
그 따스한 무관심
택시는 차선을 넘나든다 부러진 펜촉으로 
젖은 손바닥에 쓴다 

네가 보낼 이국의 밤들에 대해 
부어오르는 잇몸과 위장의 더부룩함에 대해
차내등을 끄고 차량 기지로 돌아가는 버스에 대해 
쉼 없이 쌍무지개를 그리는 와이퍼에 대해 
뜨거운 심장과 시린 발끝에 대해
나와 다른 시간에 잠들고 눈뜰 너에 대해 

와이퍼가 계속 길을 지우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전조등이 어두운
택시 안을 훑고 간다 
기억의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나방 한 마리가 퍼덕거린다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던 경찰 버스 
티베트 승려의 얼굴 위로 흘러내리던 검붉은 피 
군사분계선 주위에서 살점을 쪼고 있는 까마귀들

가도 가도 국경은 멀기만 하다 
너와 나의 국경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검문소를 지나야 너에게 닿을까

택시는 다시 등을 켜고 
비에 젖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달려간다 
구부러진 우산 속으로 비가 들이친다 
와이셔츠 주머니에 푸른 꽃이 번진다 
-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中 -

엉뚱한 얘기이긴 하지만, 
지저세계 텔로스로 가는 국경은 어떤 느낌일까. 

4차원의 물리적 법칙을 벗어난 곳이라던데.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