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7. 8. 13. 23:17
자기 만의 방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중략) 
투우장의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어디가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자신의 퀘렌시아로 삼는다. 투우사는 소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 장소를 알아내어 소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투우를 이해하기 위해 수백 번 넘게 투우장을 드나든 헤밍웨이는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썼다. 
-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성격검사를 하면 보통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눈다. 내향적인 사람, 혹은 외향적인 사람. 보통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사람들이라 홀로 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고, 마음의 안식처를 느끼며, 정신적으로 회복한다고 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상처받고, 힘겨워하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반대이다. 그들은 혼자 있을 때 힘들어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가서 사교적으로 행동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힘을 받는다고 한다. 

솔직히 난 사람을 이렇게 칼로 두부자르듯 나눈 "분류"를 참 싫어한다. 여자와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원래 다른 성격이야, 라는 구분이라던가, 어떤 사람은 타고난 문과 체질이고 어떤 사람은 타고난 이과 체질이야, 라는 이야기도 참 싫다. 내향적이라던가 외향적이라던가 그렇게 나눠질 수 있긴 한 걸까. 모든 사람에게 퀘렌시아, 즉 마음의 안식처가 있다면, 그게 꼭 한 곳에만 있다고 보는 건 안이한 판단이지 않을까. 사람에 따라, 경험에 따라, 혹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각자가 안식처로 느끼는 건 너무나 다른 것 아닐까. 그걸 단지 내향이니 외향이니 하는 말로 나눠서 쉽게쉽게 생각하려는 건 어쩌면 오만에 가까운 건 아닐까. 

내 딸아, 스스로 두 개의 방을 만들라. 
첫 번째는 진짜 현실의 방으로, 이웃을 위한 사랑이나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다음 영적인 방을 지어라. 그것은 진정한 자기이해의 방이며, 언제나 너와 함께 지니고 다닐 수 있다. 거기에서 너를 향한 신의 선하심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실제로 두 방은 하나이며, 한 방에 살면 다른 방에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은 절망하거나 거만해진다. 자기이해에만 머무른다면 절망에 빠지고, 신에 대한 앎에만 머무르면 거만이라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와 함께 가야만 하며, 그러면 너는 완전해 질 것이다. 

- 올더스 헉슬리의 '영원의 철학' 중,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 인용문 -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