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1. 1. 23:51
몸이 피곤하길 권장한다 
백날 여행해봐야 결국엔 피곤하다. 그냥 집에서 쉬는 편이 낫다. 여행 해보면 비로소 집이 좋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얘기 정말 많이 듣는데도 사람들은 여행을 간다. 

근데 사실 이런 이유는 무척 궁색하다. 굳이 여행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비슷한 이유는 넘쳐나지 않나. 대학 가봐야 뭐하나, 이미 대학생이 넘쳐나는데. 취업 해봐야 뭐하나, 취업 해봤자 남을 위해서 고생해줄 뿐인데. 공부해봤자 뭐하나, 어차피 다 까먹어 버릴 건데. 

솔직히 이런 말은 잘 포장된 함정이다. 하나의 원인은 단 하나의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가지 혹은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보통 여행이라는 것을 떠올릴 때, 그것이 '피곤을 풀어주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여행으로 인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볼 수도 있고, 인간 관계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로움도 경험해볼 수 있고, 평소 동네에선 쉽게 먹기 힘든 음식도 맛볼 수 있고, 오랜 만에 많이 걸어다닐 수도 있고, 평소 사용하지 못했던 오감을 충분히 발휘하여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고, 뭐 그런 다양한 것이 여행의 결과물이 아닐까? 

 감기 때문에 고생한 그 친구가 했던 명언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좀 귀찮고 힘든 일이 있어도 힘을 내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그 여행이 아무리 가혹한 것이었어도 나중에 남는 추억은 훨씬 더 멋있어진다. 이게 나의 철학입니다!"
1. 요시모토 바나나 <매일이, 여행>, 민음사, 2017

웃긴 게 정말로 여행이 가장 빡셌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이집트에서 모든 짐을 잃어버리고 팬티를 사러 도심을 가로질러 마트로 가던 저녁을 난 잊지 못한다.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20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항에서 덜덜 떨며 기다렸던 하루를 난 잊지 못한다. 라스베가스에서 LA까지 새벽 도로를 가로지르며 졸음을 참고 운전했던 그 시간을 난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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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