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6. 5. 23:33
관람차에 앉아 야경을 보며 
오사카에선 야경을 보기 위한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옵션을 꼽자면 아무래도 ‘우메다 헵파이브 관람차’가 아닐까? 

오사카 북부 지역에 위치한 우메다역에서 불과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HEP(헵)이라는 쇼핑몰이 위치한다.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빨간 입구가 아주 인상 깊다. 쇼핑몰 안에 들어가면 거대한 고래상이 천장에 매달려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관람차를 타려면 쇼핑몰 7층으로 가야한다. 7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쇼핑몰에서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관람차를 타려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모여든 사람의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중국인이다. 일본인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7층에 올라가면 티켓을 사서 입장한다. 물론 대부분의 관광객은 그곳에서 티켓을 사기보다는 미리 구매해둔 ‘오사카 주유패스(주요 관광지를 무료로 입장 + 지하철 및 트램 등을 무료로 이용)’를 이용한다. 

저녁 7시~8시 쯤엔 그 전까지 꽤 여유 있던 장소에 기다란 줄이 생긴다. 물론 기다란 줄도 금새 짧아진다. 거대한 관람차에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올라타기 때문이다. 함께 온 사람들은 2명 혹은 4명 씩 짝을 이뤄서 관람차에 올라탄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처음 올라갈 땐 바깥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람차가 내부를 뚫고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기 시작한다. 창문엔 어두운 밤 거리에 조명이 가득차게 되고, 빌딩들은 광고판, 카페 조명, 사무실 빛, 자동차 램프, 신호등, 사람들이 오고가는 불빛을 난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난다. 검푸른 하늘도 그 빛을 받아 붉게, 혹은 누렇게 자기 모습을 변용한다. 

그나저나 난 매 여행 때마다 야경을 보길 꼭 빠트리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도시 야경은 어디서 보든 그게 그거 아닌가? 파리의 야경, 서울의 야경, 도쿄의 야경, 상해의 야경, 싱가포르의 야경, 뉴욕의 야경. 야경을 보려고 기어이 어떤 타워 혹은 관람차에 가서 번쩍번쩍 빛나는 도시 불빛을 바라본다. 

내가 늙은 나이는 아니지만, 내 나이 쯤 되면 이젠 별 감흥이 없다. 내가 야경에서 어떤 ‘감흥’을 바랐던 게 언제 쯤이었지? 이런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난 여행 코스 끝자락에선 꼭 야경을 포함하고 있는 걸까. 이상하리만치 여행 마지막에 야경을 보지 않으면 이 도시 전체를 다 보지 못한 것만 같다거나, 혹은 남들 다 하는 걸 놓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일까. 

사실 여행이란 게 습관처럼 되어버린지도 꽤 되었다. 변변히 여행 한 번 다니지 못하던 시간들과 비교하면 지금 참 호사스러운 것일텐데, 마음가짐은 갈 수록 빈곤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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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