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공간 
내 생각엔 회사와 집 사이 거리는 1시간 정도가 좋은 거 같다.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엔 1시간 정도 등굣길이 좋은 거 같다. 

1시간이라는 시간은 시간을 허무하게 보낼 때 상당히 피곤한 시간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할 경우 자리에 앉아서 이동하지 못하면 그 피로는 더욱 가중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동하게 되면 그 시간은 생각보다 더욱 유익하다. 대학 시절에 내가 책을 읽었던 시간의 절반 이상이 등굣길이 아니었나 싶다. 사당역에서 외대앞역까지 거리는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이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면 최소 1차례 갈아타야 하는데, 책이란 매체가 없었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2006년 11월엔 더 큰 호재가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반디앤루니스가 들어왔는데, 이 덕분에 사고 싶은 책을 사러 멀리 강남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당시엔 대형 서점들이 동네 서점을 망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었지만, 당시 동네 서점엔 웬만한 소설 한 권 갖추지 않고 문제집류만 파는 곳도 허다했다. 집에서 고작 10분 거리에 대형서점이 생긴 덕에 난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어볼 수도, 살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대학생 때 내가 가장 아꼈던 독서 공간은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물론 도서관도 장단이 있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나 시장에서 인기 있는 책을 구해서 읽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에서도 새로운 책이면 바로 입고해서 3~5권씩 구해놓는 일이 많았지만, 이미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선 오래된 책을 위주로 읽었다. 책을 꽂아두는 서가엔 기둥 사이에 숨겨진 공간들이 있었는데 난 그런 공간에 숨어서 조용히 책 읽는 걸 낭만이라 생각했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할 즈음엔 아이패드를 하나 마련했다. 당시 난 밤과 새벽 사이에 외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용돈을 벌고 숙식을 해결했는데, 그때 돈을 모아 분에 넘치는 사치를 부렸다. 이렇게 마련한 아이패드로 난 신문이나 논문을 읽는 걸 꽤 트렌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패드가 있으니 독서 공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알바가 끝나는 새벽 1시 쯤엔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청계천 근처로 나와서 의자에 걸터 앉아 pdf 파일로 책을 읽기도 했다. 

회사에 들어간 이후엔 한동안 책을 뜸하게 읽었다. 회사 업무에 익숙해지고자 주말에도 출근해서 근무하고, 아침저녁으로 회사 관련된 일에만 집중해보려고 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이 돼서 다시 책을 읽게 되었는데, 당시에 전자책이 막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리디북스를 깔고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종이책이 더 익숙했고, 더 편했다. 그렇게 몇 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지금은 완전히 전자책에 푹 빠져서 책을 읽게 되었다. 덕분에 화장실에 일 보러 갈 때도 남들 눈치 보며 책 들고 가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