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8. 8. 15. 23:29
나이 서른이 넘었을 때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로 똑똑한 주변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그것을 깨달았다. 많은 자기계발서에선 ‘자신의 한계를 함부로 정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그걸 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내 한계는 없어. 지금 난 뭐든 할 수 있어.’ 라고 외치면서 지금 내가 가진 걸 파악해보려는 시도를 게을리 했다. 내가 똑똑하다는 생각, 혹은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은 사람을 가만히 멈추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난 오랫동안 게으름을 피웠다. 

나의 무식함을, 나의 어리석음을, 내가 남들에 비해서 노력하지 않았음을 글로 써보는 것은 꽤 도움이 된다. 대학교 4학년 때, 다들 그 짓을 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이렇게까지 해놓은 게 없다니. 글로 쓰기 전까지는 자신감만 가득 차 있던 터라, 나라는 인간의 객관적 지표가 모자라다는 걸 쉽게 알 수 없다. 

글이란 건 무섭다. 쓰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 적어내릴 수 있다. 단순히 나의 영어점수와 학점, 그리고 자격증 뿐만 아니라, 내가 공부했던 것들, 나의 인간관계, 나의 성격, 나의 경험, 나의 사고관과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까지.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이 있다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실천하지 않고 꿈꾸고만 있던 것들은 하나도 적을 수 없다. 

요즘 블로그가 아니라 내 에버노트와 일기 앱을 통해 따로 글을 적어나가고 있지만, 그렇게 적어놓은 나 자신에 대한 글들은 적나라하고, 재미있다. 매일 반복되는 와중에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부분이 있다. 어떤 부분이 변했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삶을 옮겨나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볼 수 있다는 점이 재밌다. 

진작 이 짓을 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이걸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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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