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0. 11. 23:39
같이 밥 먹기 
의도하지 않은 바인데, 어쩌다 보니, 일주일 중 가장 자주 함께 밥 먹는 사람은 내 옆자리 차장님이더라. 내 연인도, 내 친구도 그렇게 자주 함께 밥먹는 시간을 보내지 못할진데, 묘하게도 그런 시간이 허락된 건 내 옆자리 차장님이더라. 그래서인지 가끔 '따밥(따로 밥먹기)먹을게!'라고 외치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짐에도, 왠지 나만 도망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돌아와 밥먹게 되는 건 내 옆자리 차장님이더라. 

어떤 책에서 본 건진 기억도 나지 않아서 인용은 잘 못하겠지만, 누가 그러더라. 밥 먹는 게 단지 음식을 섭취하는 거에 불과하다면, 인간이나 기계나 동물이나 다를 바가 뭐냐고. 밥 먹을 때 누군가 내 앞에서 함께 먹어준다는 기분만으로도 왠지 모를 뭉클한 감정이 들어서, 원래 밥먹는 건 함께 먹는다는 걸 전제로 한다고. 

그나저나 나도 할머니랑 함께 산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랑 할머니가 함께 밥먹는 풍경도 참 많이 변했다. 처음 함께 살게 됐을 땐,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이야, 이거 우리 엄마가 하는 것보다 훨 낫다. 할머니가 최고네.'라고 엄마 몰래 말해주곤 했었다. 할머니는 나와 함께 겸상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여자는 원래 남자랑 같이 먹는 게 아니야, 라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구세대적인 생각 때문인지, 혹은 그런 구세대적인 발상을 핑계로 이미 혼밥의 매력에 빠져 있으셨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음식 솜씨도 떨어졌고, 매일 매일 손주 밥상 차려주시는 것도 힘에 겨우신 터라, '됐다. 내 밥은 내가 알아서 먹겠다. 할머니는 밥 차리지 마라.'라고 선언한지도 벌써 한참이다. 

부모님도 저 멀리 계시고, 내 연인도 주중에는 쉽게 만나기 어려우니, 가족과 밥먹는 게 이미 옛날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1. 고은, <순간의 꽃> 中, 문학동네, 2001

시인도 흔하다 말하는 게, 내겐 참 소중한 풍경이 되어버렸으니, 오히려 그 때문에 그 모습이 최고의 것이라 공감이 간다. 

가끔 Youtube로 먹방도 본다. 요즘엔 지상파나 Cable 방송보단 Youtube로 투박한 먹방을 보는 게 훨씬 낫다. 꾸며지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더 가족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장면을 켜놓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묘하게 내 앞에서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묘한 느낌이 든다. 

아마 그 묘한 기분 때문에 요즘 그리도 먹방이 유행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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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