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10. 10. 23:25
무너지는 한 순간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땐 다 잘된다. 사람 관계도 잘 되고, 공부도 잘 되고, 일도 잘 되고, 심지어 돈도 잘 벌린다. 행복해진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걸까.' 

괜한 걱정이다. 

쉽게 불행해진다. 무너질 땐 모든 것이 한꺼번이다. 친했던 친구와도 싸우고, 약속도 다 깨지며, 주식이나 땅값도 폭락하고, 가족은 속을 썩인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나란 존재가 한 없이 사소해보일 때다. 여기서 <사소하다>라는 말은 우주에 나간 우주인이 '인간은 참 사소한 존재군.'이라고 멋지게 자조하는 투에서의 사소함이 아니라, 단지 그 말 그대로의 사소함이다. 그럴 땐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바보처럼 보인다. 그들의 고민이 치졸해보인다. 내 주변 사람을 무시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껴있는 나 자신도 함께 무시하게 된다. 

내가 보는 세상만사는 동시성을 띤 왕복운동으로 활기를 띤다. 일제히 전진하는가 싶다가도 느닷없이 후퇴한다. 
1.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2016

어릴 때 컴퓨터에 깔려있는 프로그램 중 가장 즐겨하던 것이 '바이오리듬'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내 생년월일과 성별을 넣으면 대충 하루의 바이오리듬이 나온다. 그 프로그램에 따르면 대략 30일을 주기로 내 바이오리듬은 정상에서부터 바닥을 찍곤 했다. 솔직히 이 프로그램에서 처방해준 내용은 신뢰가 가지 않았는데 그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이론적 토대는 신뢰하게 되었다. 왜냐면 정말이지 기분 좋을 때는 며칠 간 계속 기분이 좋다가도, 기분 나쁠 때는 또 며칠 간 계속 우울했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해서 오늘 내가 우울하고 무너지는 기분이 드는 건 내 바이오리듬이 무너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너무나도 비인간적으로 길었던 11일의 연휴가 끝나니까, 내 신체가 내 정신이 도저히 일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제길. 어젠 솔직히 이상한 불안감에 2시간 정도밖에 못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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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