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시, 에세이2017. 9. 26. 23:54
'나만 왜 이럴까'란 이름의 우물 
두통에 시달린 머리통을 연탄처럼 깨부수고 싶었죠
두통을 잊으려 허다한 나날 파스를 붙였죠
무엇보다 괴로운 건 남은 멀쩡한데,
나만 왜 이럴까,
나만 왜 이럴까,
나만 왜 이럴까 하는 우물에 빠져들며
우울의 붉은 깃발만 펄럭였어요
자신을 놓아 버리는 능력이면 살 텐데
정성 다해 기도하며 
온몸에 햇빛 받고 쏘다니면 다시 태어날 텐데
온몸에 퍼져 드는 보약 같은 햇빛이면
오래 아픈 일들은 다 잊을 텐데
독을 품은 오기라면 
지극한 사랑이면 
지긋지긋한 그리움이라면 
- 신현림 시집 '반지하 엘리스' 中 - 

요즘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 시리즈를 읽고 있다. 맥락없이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신현림 작가가 쓴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 내가 따로 시를 공부하지 않은 탓인지, 어떤 시집은 읽어도 대체 어느 맥락에서 읽어야 하는 건지 모를 것들도 많다. 이 시가 대체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화자가 대체 어떤 지적 배경에서 얘기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워서 심해에서 허우적 대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신현림 시인의 시는 일상 언어를 많이 차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화자도 명쾌하고, 시가 흘러가는 방향도 분명하다. 

덕분에 이 시도 내 이야기인 것처럼, 읽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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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