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8. 7. 23:20
존댓말을 갑자기 쓰기 시작하면서 
그 즈음이면 수학여행을 다녀온 형들과 누나들은 중학교에 들어가 교복을 입고 어두운 길만 밟고 다녔다. 그때의 교복이란, 그들이 이제 다시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와는 오징어잡기나 강 건너기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텐션 플리이즈, 바우!”의 세계로 그들이 넘어갔다는 뜻이었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중 - 

5층짜리 아파트들이 무려 15동이나 모여있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내가 살았던 시골에선 그 정도로 잔뜩 몰려있는 곳은 해군 가족들이 모여있는 해안 단지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가면 동네 친구들과 형 누나 동생들이 잔뜩이었다. 학교시간이 마치면 다들 학교 근처 운동장에서 놀기보단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그곳이 우리의 집이었다. 아파트 단지엔 놀이터가 2곳이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 있는 좁은 차도를 중심으로 서로의 아지트를 구분했다. 물론 이건 처음에만 그랬다. 막상 친구가 되면 구분같은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가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이 2곳이었다는 정도의 차이 뿐이었다. 

‘철이 든다’라는 말은 보통 중학교 때 쓰는 말이었다. 사춘기라는 용어도 중학교 1학년을 위한 것이었다. 초등학교(혹은 국민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은 고작 1년밖에 차이가 없고, 12월의 초등학생과 1월의 중학생은 30일도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도, 서로가 마주하고 있으면 어딘지 데면하게 되는 구석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무의식 중에 공유했던 감각이 있다. 중학교로 넘어갔는데도 동네 형 누나들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그건 무례하다는 감각이었다. 일주일 전에 같이 만나서 위아래라는 감각없이 야, 야라고 부르고 반말로 친구처럼 지내던 아이가 어느 순간 존댓말을 쓰는 세계로 가는 느낌이었다. 교복을 입은 그 친구는 이제는 의젓한 어른이 되어서, 관대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이 때의 경험을 다시금 회상했던 적이 있는데, 정말 후회했다. 내가 왜 그 때 형 누나들에게 갑자기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을까. 그냥 편하게 친구처럼 대했다면, 그냥 존댓말을 쓰지 않은 채로 있었다면 우린 계속 친구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비록 그들이 내게는 형이나 누나이기는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형 누나 중에 친구인 사람이 뭐 한 두 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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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