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기타 잡문2017. 6. 24. 23:54
오래된 물건에 대한 집착  
입사할 때부터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책장 등이 얼추 이십여 년이 흘렀다. 주인 못지않게 상당히 낡은 셈이다. 구입할 당시, 이런저런 모델을 고르던 중 조금 비싼 듯했지만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골랐는데 다행히 담당자가 선뜻 구입해 주었다. 이 직장에서는 보통 조달 품목이라 하여 규격화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것을 구입해 주는 것이 상례인데, 당시로서는 가격도 꽤 비싸고 스타일도 세련된 가구들을 별 말없이 구입해 준 호의에 감사할 따름이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십여 년 이상은 족히 사용할 테고 그렇다면 정년퇴직할 때까지 사용하고도 남는다. 
- 박현택의 '오래된 디자인' 中- 

내가 물건을 그리 쉽게 버리는 사람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건에 대해서 집착하는 사람도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썼었던 시집이 아직까지도 남아서 내 책장에 꽂혀 있지만 이 시집을 내가 잃어버린다고 해서 며칠 간 계속 상심하는 꼬라지를 보일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옆 책장에는 이미 수백 권 혹은 수천 권(?)의 책이 꽂혀 있지만 이 책들을 모두 잃어버린다고 해서 그것이 커다란 문제는 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내 기억 속에 잊혀져 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건이라고 하기엔 다소 애매하지만, 내가 기록한 기록물들일 사라질 때 난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 같다. 내가 기록한 수천 개의 메모, 블로그에 작성한 글, 어릴 적 그려놓은 그림을 인터넷 파일로 저장해둔 것. 지금은 모두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이런 것이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진실로 슬퍼할 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쌓아왔던 오랜 역사가 사라져버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어떤 물건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내게 어떤 특별한 애착을 남길 순 없다. 그것은 단지 어떤 생각을 남길 뿐이다. 어느 순간 그 물건을 집어들거나 혹은 그 물건을 조심스레 만지면서 '내가 그 때 이런 선택을 했었지.'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혹은 그 물건과 관계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집착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다른 어떤 사건이 소속되지 않은 단지 그 물건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나는 한없이 차가운 모습을 상상한다. 

물론 이건 내 얘기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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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케치*